'이념'과 '순수'를 문학이라는 전체의 절반 정도로 나누어 서로 대립각을 세우던 시대와 잠시 포개지는가 하면, 하나의 우위를 진지한 어조로 다투면서, 그럴 것이라 믿었던 그 이후조차, 아니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대안처럼 등장한, '분석-전망주의'와 '역사-실천주의'의 이분법이 다시 투사되는 것과도 같아 보였다. 그러나 2000년대 '시와 정치' 논쟁은 이전의 논의들이 초점을 맞추지 못하거나 누락한, 그러니까 거개가 문학의 사회적 효과와 행동, 즉 참여의 여부와 그에 대한 촉구에 집중되었던, 그렇게 '참여'와 '자율', '사회'와 '문학'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지경에 몰려 결국 양분되고 말았던 인식의 공백 지점을 과감히 파고들었다.
2000년대 시와 정치는 그러니까, '시적인 것-문학적인 것-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일상적인 것'의 분리 불가능성을 전제하는 논리를 전개했는데, 이는 '정치'나 '시' 등과 같은 용어들이 관점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에서 쓰인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경계한 결과이기도 했다.
시와 예술, 문학이, 기존 세계의 '감성적' 통념들과 마비된 감각을 해체하고, 이와는 다른 종류의 분배로 변환시킨다는 사유('감성의 분할'이라고 소개된)에 바탕을 두고, 문단에 실로 진지한 물음들을 펼쳐 보였다. 이러한 실천을 도모할 수행적performatif이고 주관적subjectif인 예술의 형식과 언어의 고안이 삶의 새로운 형태를 발명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행위라는 사유는, 결국 예술과 정치 사이의 깊이 파인 이분법을 기계적으로 왕복하던 이전의 논의들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것이었다. 가장 '시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말은, '현실' 정치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그렇다고 무관하다고도 할 수 없는), 정치적인 것을 근본적인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해내고자 하는 비평적 시도와 맞닿아 있었다. 현실 정치가 유달리 '정치적인 것'을 고민하는 것도, 그것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도 아니다. 예술과 시는, 경계와 구획 혹은 통념과 도식을 불변하는 진리로 여기는 것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견고한 패러다임과 그 담론들을, 초월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싸우는 고유한 방식들(예술)이나 말(시, 문학)을 고안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형식을 찾아나서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만 정치적인 것들을 사유하며, 정치적인 것들에 참여한다. 시와 시적인 것, 정치와 정치적인 것이 갖는 근본적인 차이와 마찬가지로, 시 없는 정치는, 공동체 없는 공동체주의, 역사성을 결여한 역사주의, 모더니티를 누락한 모더니즘일 뿐이다. 우리가 시라 부르는 인간의 활동을 언어의 고안을 통한 삶의 방식의 고안이며, 삶의 방식의 고안을 통한 언어의 고안이라고 여기는 까닭이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며, 이는 역사적으로 시인이 가장 정치적인 존재였기에 정치공동체에서 추방을 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이유가 된다. 시인이 정치공동체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는 것은, 시인이 구사하는 말이 정치공동체의 통념과 근간을, 가장 정치적으로, 그러니까 근본적인 방식으로 비판하는 말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2000년대 시와 정치 담론은, '철학과 시의 오랜 불화'와 같은 해묵은 테제를 꺼내 든 것이 아니다. 시적인 것의 고안이 정치적인 행위라는 것, 이 양자의 고안이 서로 맞물려 있거나 최소한 서로가 서로에게 간섭을 한다는 것, 이 고안에 의해, 이 세계에 당도하여 재생되는, 정치적 통념과 도식들 및 이분법을 넘어서는 가치를 사유할 불가능한 여정의 1가능성이 모색될 수 있다는 진지한 전망이었다.(<2000년대의, 시, 그리고 비평 - 주체-정치-리듬>, 조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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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의 유토피아와 같은 것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실현 가능한 무엇으로 제시된다. 정의-평등-자유와 같은 제안을 포기하는 현실 정치가 이 세상에서 좀처럼 목격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복된 도식, 불변의 진리, 민주주의를 선거 철에 맞추어 강조하는 일, 그 이상의 언술을 생산하지 않는다. 정치는 실제로는 정치적인 것을 돌보지 않는다. 시는 균등하고도 이상적인 도식 속에 갇힌 언어를 실천의 반열에 올리지 않는다. 시는 차라리 현실 정치의 담론들이 돌보지 않는 불균형과 불평등과 부조화, 비균질적인 것들을 목도하고, 그와 같은 상태를 언어화하여 오히려 이와 같은 것들의 가치를 사유하게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