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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올킬을 위한 로드킬

공장장_ 2017. 7. 2. 23:49

  노트북 배터리가 12퍼센트 남았다. 어제 본가 들어오니 문학실험실에서 김효나 책이 와 있었고 잔고가 없어 기부고 뭐고 못 하고 있는데 꾸준히 책을 보내주시니 감사할 따름. 쓺이나 문장 이런 데 올라왔을 때에는 어째서인지 읽어도 안 읽혀서 놔뒀는데 단행본으로 나와 그런가 오가는 버스 안에서 다 읽을 수 있었다. 이인성 선생 눈에는 안 들 수가 없는 소설이로군. 이인용 독백이라는 것 자체가 한없이 낮은 숨결의 전반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형식이라 그런지. 당연한 얘기 같지만 미술 하는 사람 티가 난다. 나로선 시효가 지난 말장난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나 으아/의아 같은 것들이 많이 아쉬웠다. 주운 기억이나 티브이에 대하여 같이 반짝이는 부분들이 있었고. 또 어떨까, 인용된 텍스트 주변으로 좋았다. 그러나 전복이란 전례 없음이라는 생각. 전복이 미덕은 아니지만 판돈이 아쉬운 건 있다.


당신은 지금 핏빛 분노로 고통받고 있지요. 당신은 그 분노를 그렇게 표현했지요. 핏빛이라고.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벽 잔해 위에는 어쩌면 당신도 알지 못한 채 휘갈긴 그 네 글자가 얼마 전에 폭우에도 지워지지 않은 채 문신처럼 남아 있었지요. 나는 그것을 봤지요. 이번엔 똑똑히 봤어요. 나와 함께 그곳을 찾은 몇몇 사람들도 그것을 봤어요. 피할 수 없이 똑똑히, 핏빛 분노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멈춰 섰어요. 피할 수 없이 멈춰버린 순간의 적막 속에서, 이걸 어찌할까, 누군가 말했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어요. 얼마 뒤, 이걸 어째, 다시 누군가 중얼거렸어요. 다시 침묵이 이어졌어요. 침묵 속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의 빠른 발걸음과 웃음소리가 들렸고, 그 속으로는 그보다 열 배는 빠른 템포의 멜로디들, 지난밤의 오디션과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에 소개되 모든 차트를 올킬한 힙합 혹은 무언가의 비트가 마치 이 도시의 심장박동인 것처럼 낮고 초조하게 울리고 있었으며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이 그 진원지는 가히 전염병의 속도로 모든 도시를 올킬한 카페, 식당, 멀티숍이었으므로 주저할 것도 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로드킬, 이것은 로드킬이다, 저들의 올킬을 위한 로드킬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길 위로 무참히 내몰리는 비참히 죽어가는 로드킬이다, 로드킬이다, 로드킬 당했다, 하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고, 당신의 핏줄 같은 네 글자 앞에서 그럴 수 없었고, 대신 우리는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어요. 넓지도 않은, 그러나 어떤 심해보다 캄캄하고 막막한 공간의 잔해 속을, 각자의 펜과 사진기를 쥐고, 유령처럼 떠돌기 시작했어요.


  십 퍼센트. 중고서점에서 현대문학 17년 1월호 보았고 오한기와 이장욱이 기억에 남는다. 오한기는 정말 집요하다는 느낌이다. 강박 없이. 종전까지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소설은 곰 사냥으로 거기에는 곰 탈 쓰는 인간들이 자꾸 등장하는데, 여기엔 또 토끼가 나온다. 그것도 머리만. 오히려 이런 소설들이 의인법이라는 제목에는 더 직설적으로 들어맞지 않나? 너무 직설적이라서 그런가. 악스트에 연재되는 병든 암소...에서 이미 동물도 넘어 식물로 간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튼 인간(성) 미만이라는 사태를 아예 인간 외의 존재에서 출발해 거의 희극적이고 우화적으로 도달하는 방식이 나로선 신선하고 유효하다고 여겨진다. 책 한 권이 다 이런 식이면 비위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토끼 머리 하니까 천재토끼 차상문의 표지가 떠올랐는데 정작 그 소설은 재미없어서 다 못 읽었다. 멀리는 장용학도 생각나더군. 


  앉아서 한 편 썼다. 쓰는 일이 낚시 하는 일 같다. 예전에는 크고 아름다운 착상을 던져서 입질이 와도 감이 안 와서 낚아내질 못했다면 이제는 대충 던져도 (감으로) 대충 잡을 수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대충 끌어올려보면 다 피라미라는 것... 그러나 나는 방생을 잘 못 하는 스타일이고 다 어망에 처박아둔다. 함량미달이고 미진하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아주 진한 것. 작고 밀도 높은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