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할 것인가 아니면 부조리할 정도로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다. 어쩌면 그것은 불가피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문화된 여러 노선들을 가로지르는 굵직한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하던 1970년대 후반 미국의 문학 이론은 '텍스트성'의 미궁으로 뒷걸음치고서는 유럽의 혁명적인 텍스트성에 대한 가장 최근의 주창자들 - 데리다와 푸코 - 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이들에 대한 숭배와 이들로부터의 교화는 이들이 스스로 풍기는 슬픈 색조로도 충분히 그 유혹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심지어는 유럽의 문학 이론조차도 이제 공공연하게 불간섭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것, 그리고 (알튀세르의 문구를 사용한다면) 세속적이거나 정황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오염된 것은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들 이론이 자신의 주제를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나름의 독특한 방식이라는 것은 괜히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 아니다. '텍스트성'은 뭔가 신비하면서도 살균된 문학 이론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텍스트성은 역사라고 불리는 것의 정반대편에 있는 것이면서 이를 대치하는 것이 되었다. 텍스트성은 생겨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다. 그렇지만 동일한 이유로, 특히 어느 곳이나 어느 때나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산되지만,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아니고 어떤 시간에도 아니다...... 오늘날 미국 학회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문학 이론은 대부분이 텍스트성을, 그 텍스트성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인간적 작업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상황들, 사건들, 물리적 의미들로부터 고립시켜 버렸다.
내 입장은 텍스트들이란 세속적이며, 어느 정도는 사건들이고, 그리고 그것들이 설사 그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여전히 사회적 세계, 인간의 삶, 그리고 물론 그 역사적 순간들의 한 부분으로서 그 속에 자리를 차지하며 또 해석된다는 것이다.
사이드의 주장은 내가 처해 있던 상황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것처럼 보였다. (...)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이 하나의 통일된 기초로 단일화될 수 없는 발명들이 가지각색으로 뒤얽혀 있는 하나의 묶음이라고 주장했다. 수학은 역사적 행위의 산물이다. 이것이 은유로서의 텍스트 개념과 비슷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탐구가 지니는 두드러지게 구축적인 경향을 고려에 넣는다면, 이러한 '전회'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괴델의 접근법을 무시하기는커녕 비트겐슈타인은 완전히 그것을 알고 있었고, 이는 "러셀의 논리학을 안에서가 아니라 밖으로부터 공격하는 것, 그것이 나의 과제다"라는 그의 진술에서 입증된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괴델과 같은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비트겐슈타인이 볼 때, 괴델은 러셀의 개념적 틀 '안'에 머무르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바깥'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오직 '세속적 비평'의 길을 거쳐서일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실제 건축에서는, 이데아로서의 어떤 디자인을 실현하는 것이 건축이라는 생각보다 어울리지 않는 것도 없다. 다른 스탭진들과의 협력, 고객과의 대화 및 설득과 같은 훨씬 더 결정적인 요인들이 개입한다. 처음에 생각했던 디자인은 실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변형되게 마련이다. 디자인은 비트겐슈타인의 '놀이'와 비슷한데, 그에 따르면 "우리는 놀이를 해 나가면서 규칙들을 만들어 간다." 어떤 건축가도 어떻게 지어질 지를 미리 알 수는 없다. 어떠한 건축도 자신의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건축은 그것이 제작자의 통제를 넘어서는 제작 또는 생성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탁월한 사건이다.(가라타니 고진, <영어판 서문>, <<은유로서의 건축>>, p.49-51)
// 나한테 너무 어렵고.. 본문 1장 읽으면서 서문 다 잊어버렸다... 1장의 시작은 플라톤 발 서구 형이상학을 무너뜨리겠다는 운동=해체론의 선언이고 1장의 끝은 단지 이상=이데아의 불가능성을 공격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립하는 것은 생성과 제작, 그리스와 이집트(유태교와 기독교의 기원)이며 플라톤은 후자였는데, 이를 "부조리할 정도로 이성적"이라며 공격한 니체의 시도는 참신했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자신의 '낭만성'으로, 고진은 "이성을 해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성 자신 뿐"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건축에의 의지에 대한 몯느 비판은 "낭만주의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편 수학은 플라톤에게 엄밀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플라톤의 건축(에의 의지)에 있어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플라톤은 '관계'를 이데아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수학이란 "물질의 관계들을 탐구하는 하나의 (특수한) 방법"이 아닌가?. 20세기 형식주의자들은 이 물음들 사이에서 출현했음에도 그들 자신의 '토대'를 묻지 않는 식으로 이 물음을 피함으로써 플라톤에 대해 제대로 된 입장을 가지는 데 실패한다. 고진이 보기에 플라톤에게 있어 독특한 점은 그가 "확실성을 위한 토대를 대화에서 찾았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