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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달만 헛되이 그 빛을 밝히고

공장장_ 2018. 11. 8. 22:47

"니나 : (...) 나는 갈매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배우예요. 그래요, 배우예요! (아르까지나와 뜨리고린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왼쪽 문으로 뛰어가서 열쇠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그이도 여기에 있군요... (뜨레쁠례프 쪽으로 돌아와) 그렇군요... 괜찮아요... 그래요... 그이는 연극을 믿지 않고 언제나 나의 꿈을 비웃기만 했어요. 그래서 차츰 나도 믿음을 잃고 용기를 잃어버렸죠... 사랑에 대한 걱정, 질투, 아기에 대한 떨칠 수 없는 책임감... 결국 나는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돼버렸죠. 연기도 엉망이고... 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몰라 무대 위에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어요. 대사도 제대로 말해지 못했고. 엉망으로 연기할 때 느끼는 기분을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나는 갈매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당신이 갈매기를 쐈던 것 기억나세요? 우연히 어떤 사람이 찾아와 발견하고는 아무 이유도 없이 파괴하고... 작은 이야깃거리... 아니, 아니예요... (이마를 문지른다) 무슨 이야기를 했죠...? 아, 무대 이야기였죠.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이제는 진짜 배우예요. 나는 즐겁게 환희를 느끼며 연기해요. 무대에 취해 나 자신을 아름답게 느끼죠. 여기 머무는 동안 줄곧 걸어다니면서 매일매일 나의 정신력이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느껴요... 이제는 알고 이해해요. 꼬스쨔, 우리의 일에서, 연기를 하건 글을 쓰건 마찬가지죠, 중요한 것은 꿈꿨던 빛나는 명예가 아니라 견뎌 내는 능력이에요. 자신의 십자기를 지고 신념을 가져야 해요. 나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고통스럽지 않아요. 나의 소명을 생각할 때면 인생이 두렵지 않지요.

뜨레쁠례프 : (슬프게) 당신은 당신의 길을 찾으셨군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군요. 하지만 나는 공상과 환상의 혼돈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누구에게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나에게는 신념도 없습니다. 소명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안똔 빠블로비치 체호프, <갈매기>, 오종우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