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오늘은 부럽지 않은 거지가 없구나 최소한 나는 아니라서

공장장_ 2018. 11. 20. 12:37

담배 가게

 

 

페르난두 페소아(알바루 드 캄푸스)

김한민 역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영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가 되기를 원할 수조차 없다.

이걸 제외하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꿈을 품고 있다.


내 방의 창문들,

아무도 누군지 모르는 이 세상 수백만 개 중 하나인 내 방에서,

(그리고 만약 안다 한들, 뭘 안단 말인가?)

너희는 행인들이 끊임없이 다니는 어느 길의 신비로 나 있구나,

그 어떤 생각들에도 접근 불가한 길로,

진짜, 말도 안 되게 진짜이며, 맞는, 알 수 없게 맞는 길로,

돌들과 만물 아래 존재하는 것들의 신비와 함께,

벽을 습기로 채우고 머리카락을 희끗하게 만드는 죽음과 함께,

전부의 마차를 무(無)의 큰길로 모는 운명과 함께.


나는 오늘 패배했다, 마치 진리를 깨달은 것처럼.

나는 오늘 또렷하다, 마치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마치 사물들과 더는 우애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작별뿐, 이 집 그리고 이쪽 편 길이

열 지어 늘어선 기차들로 변하면서, 나의 머릿속에

출발을 알리는 호적(號笛) 소리,

출발과 동시에 떨리는 신경들과 삐걱거리는 뼈들.


나는 오늘 어리둥절하다, 고민했고 찾았고 잊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오늘 갈라져 있다

바깥의 현실 같은, 맞은편 담배 가게에 대한 충성심과

내면의 현실 같은, 전부 꿈이라는 감각에 대한 충성심 사이에서.


나는 모든 것에 실패했다.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않았기에, 어쩌면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도.

집의 뒤편으로 난 창문을 통해

나는 내가 배운 교훈으로부터 내려왔다.

큰 뜻을 품고 시골까지 갔으나,

거기서 발견한 건 그저 풀과 나무뿐,

어쩌다 사람이 있다 싶으면 남들과 다를 바 없었다.

창가를 떠나, 나는 의자에 앉는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 것인가?


내가 뭐가 될지 난들 알겠는가, 내가 뭔지도 모르는 내가?

내가 생각하는 게 된다고? 하지만 너무나 많은 게 될 생각인걸!

너무나 많은 이들이 똑같은 게 되려 하는데, 그렇게 많이는 있을 수 없다!

천재? 이 순간에

10만 개의 뇌가 나처럼 천재라고 꿈속에서 상상하지만,

누가 알랴, 역사는 단 한 명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미래의 수많은 성취들의 거름일 뿐이리라.

아니,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

모든 정신 병동마다 확신에 찬 정신병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 아무런 확신이 없는 나는, 그들보다 더 옳을까 아니면 덜?

아니, 나는 나 자신조차......

세상의 수많은 다락방과 다락  아닌 방들 중

이 시각에 자칭 천재들이 꿈꾸고 있지 않은 곳이 몇이나 될까?

드높고 고귀하고 비상한 열망들

─ 그래, 정말로 높고 고귀하고 비상한,

게다가 실현이 될지 모르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단 한 번도 진짜 햇빛을 못 보거나, 들어 줄 귀 하나 못 찾을까?

이 세계는 정복하려고 태어난 자를 위한 것이지

정복할 수 있다고 꿈꾸는 자를 위한 게 아니다, 설사 그들이 맞다 해도.

나는 나폴레옹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이 꿈꿨다.

나는 가상의 품에 예수보다 많은 인류애를 품었다.

나는 그 어떤 칸트도 쓰지 못한 철학들을 비밀리에 만들어 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리고 아마 영원히, 다락방의 아무개,

비록 거기 살지는 않지만,

나는 항상 무언가를 위해 타고나지는 않은 사람일 것이고,

나는 항상 단지 자질은 있었던 사람일 것이며,

나는 항상 문 없는 벽 앞에서 문 열어 주길 기다린 사람일 것이다.

닭장에서 무한의 노래 시들을 노래한,

덮여 있는 우물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은.

나 자신을 믿느냐고? 아니, 나는커녕 아무것도.

뜨거운 내 머리 위로 자연을 들이부어라

그 태양, 비, 그리고 내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

나머지는 오려면, 아니 와야 하면 오고, 아니면 말아라.

별들의 심장의 노예들, 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까지는 세계를 정복했었지,

깨어났더니, 그것이 흐릿하고,

일어났더니, 그것이 낯설다,

우리가 집을 나서자, 그것은 지구 전체이며,

또한 태양계이자 은하수이자 무한이다.


(어린 소녀야, 초콜릿을 먹어,

어서 초콜릿을 먹어!

봐, 세상에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모든 종교들은 제과점보다도 가르쳐 주는 게 없단다.

먹어, 지저분한 어린애야, 어서 먹어!

나도 네가 먹는 것처럼 그렇게 진심으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면!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 선, 은으로 된 종이, 은박 포장지를 뜯자마자

모두 다 땅에 버려 버린다, 삶을 버렸던 것처럼.)


하지만 내가 절대 되지 못할 것들을 향한 씁쓸함으로

최소한 이 시구들의 서투른 글씨체,

불가능으로 향하는 부서진 관문은 남는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에게 멸시를 바친다, 눈물 없이,

우아하게, 적어도 동작만큼은 너르게 내던진다

나라는 그 더러운 옷을, 되는대로, 만물의 흐름에 맡기듯,

그렇게 나는 상의도 입지 않은 채 집에 있다.


(너, 위로하는 너, 존재하지도 않는 그래서 위로가 되는 너는,

혹은 살아 있는 조각상처럼 상상되는 그리스의 여신,

혹은 말도 안 되게 고상하고 불길한 로마의 귀족 여인,

혹은 지극히 온순하고 화려한 방랑 시인들의 공주,

혹은 어깨를 드러낸 채 냉담한 18세기의 후작 부인,

혹은 우리 아버지 세대를 풍미하던 고급 창녀들,

혹은 무언가 현대적인,  정확히 뭔지 모르겠는 

이 모든 게, 뭐가 됐건, 누가 됐건,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주기를!

내 마음은 비워진 양동이.

혼을 불러내는 사람들이 불러내는 것처럼 나도 나 자신을

불러내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창문가로 가서 온전한 투명함으로 길거리를 바라본다.

상점들을 보고, 인도들을 보고,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본다.

서로 교차해 지나가는 옷 입은 생명체들을 본다,

더불어 개들도 존재하고 있음을 본다,

이 모든 것이 추방 선고처럼 무겁게 짓누르고,

이 모든 것이 낯설다, 다른 모든 것처럼.)


나는 살았고, 공부했고, 사랑했다, 심지어 믿기까지 했다,

오늘은 부럽지 않은 거지가 없구나 최소한 나는 아니라서

각자의 누더기들과 상처들과 거짓말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너는 한 번도 살지도 공부하지도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았겠구나

(왜냐하면 이것들은 전부, 전혀 안 하면서도 하는 게 가능하니까)

어쩌면 너는 겨우 존재한 것뿐일지도, 마치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꼬리는 꼬리대로 도마뱀으로부터 떨어져 꿈틀대는.


나는 나를 가지고 나도 몰랐던 걸 만들었고,

나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건 안 만들었다.

내가 입었던 도미노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누가 아닌지를 곧바로 알아봤고, 나는 부정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를 잃어버렸다.

가면을 벗으려고 했을 때는,

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걸 떼어 내고 거울로 날 봤을 때는,

나는 이미 늙어 있었다.

취해 있었고, 벗은 적도 없는 도미노를 이제는 어떻게 입을 줄도 몰랐다.

나는 가면을 버리고 탈의실에서 잠들었다

해칠 염려가 없다고

관리자가 눈감아 주는 개처럼

그리고 나는 내 숭고를 증명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쓸 것이다.


내 쓸모없는 시구들의 음악적 본질,

내가 만들어 낸 무언가처럼 널 만날 수만 있다면,

맞은편 담배 가게와 항상 마주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의식을 밝고 선다면,

마치 취객이 걸려 넘어지는 카페트 혹은

집시들이 훔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문간 깔개처럼.


그런데 담배 가게 주인이 나타나서 문간에 선다.

나는 머리를 반쯤만 돌린 불안한 자세로, 또

반쯤만 이해된 영혼의 불편한 심기로 그를 바라본다.

그도 죽겠지 그리고 나도 죽겠지.

그는 간판을 남기고, 나는 시를 남기겠지.

언젠가 때가 오면 가판도 죽을 것이고, 시도 마찬가지.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간판이 있던 거리도 죽겠지,

그리고 내가 시를 쓴 언어도.

이 모든 게 벌어진 회전하는 행성도 죽겠지.

다른 행성들의 다른 행성계에서는 사람 비슷한 무언가가

계속해서 시 같은 걸 지을 테고, 간판 같은 것 아래 살겠지.

항상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마주 보면서,

항상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만큼이나 쓸모없이,

항상 불가능은 현실만큼이나 어리석게,

항상 깊은 신비는 잠든 표면의 신비만큼 확실하게,

항상 이것 또는 저것, 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런데 한 남자가 담배 가게에 들어섰다 (담배를 사러?)

그러자 갑자기 그럴듯한 현실이 내 머리 위로 무너진다.

나는 활력과 확신에 차서, 인간적으로, 엉거주춤 일어나,

정반대로 말하는 이 시구들을 쓰려 할 것이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걸 쓸 생각에 잠기며

그 담배에서 모든 사상들의 자유를 맛본다.

나름의 길이라도 되듯 연기를 따라가 보며,

나는 만끽한다, 예민하고 적절한 어느 순간에,

모든 사변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형이상학이 불쾌한 기분의 결과라는 자각.


그런 다음 나는 의자 뒤로 몸을 젖히고

계속해서 담배를 피운다.

운명이 내게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피우리.


(내가 우리 세탁부 딸과 결혼했다면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르지.)

여기까지 상상하고, 의자에서 일아난다. 창문으로 간다.


남자는 담배 가게에서 나왔다. (잔돈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아, 아는 사람이다. 그는 형이상학 없는 에스테베스.

(담배 가게 주인이 문간에 섰다.)

마치 신이 내린 본능처럼, 에스테베스도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그는 내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고, 나도 외쳤다 잘 가 에스테베스! 그리고 우주는

이상도 희망도 없이 내 앞에 재구축되었고, 담배 가게 주인은 미소를 지었다.


(1928년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