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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는 자신이 얼마나 객체 자체인지를 잊은 채

공장장_ 2019. 3. 6. 14:09

   "주체와 객체의 분리는 실제적이면서도 환영적이다. 먼저 인식 영역COGNITIVE REALM 안에서의 실제적 분리, 인간 조건의 이원성DICHTOMY, 강압적 발전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건 옳다. 또한 그것은 그른데 이는 그렇게 귀결된 분리가 실체화되어서는 안 되며, 불변항AN INVARIANT으로 마술처럼 변형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체와 객체 분리 내의 모순은 인식론으로 전달된다. 그들은 분리된 것처럼 사유될 수는 없을지라도 분리된 그 유사물들PSEUDOS은 상호 매개된 채 드러난다. - 주체가 매개하는 객체 그리고 더욱더 각이한 방식 속에서 객체가 매개하는 주체. 분리가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수립되자마자 그것은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다. 이야말로 이데올로기의 통상적인 형태NORMAL FORM다. 그 결과 정신은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것으로 지위를 찬탈하게 되지만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다. 독립성을 주장하는 것은 지배를 할 것이라는 주장을 예고한다. 일단 객체로부터 근본적으로 분리되면서, 주체는 객체를 자신의 수단으로 축소시킨다. 주체는 자신이 얼마나 객체 자체인지를 잊은 채, 객체를 삼켜버린다.

   주체와 객체의 행복한 동일성이라는 시간적이면서도 초시간적인 원상태ORIGINAL STATE라는 상PICTURE은 낭만적이지만 - 때로는 소망 투사WISHFUL PROJECTION이며 이것은 오늘날 단지 거짓말에 불과하다. 주체 형성 이전의 미분화된 상태는 자연이라는 맹목적인 그물에 대한 공포이자 신화에 대한 공포였다. 위대한 종교들이 진리내용을 가진 것은 바로 이에 대한 저항 속에서였다. 플라톤의 변증법에서조차 통일성은 그를 이루는 다양한 항들을 요구한다. 통일성을 보기 위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분리의 새로운 공포는 혼돈이라는 옛 공포를 변모시킬 것이다. - 양자는 언제나 동일한 것이다. 따분한 무의미성에 대한 두려움은 그 옛날 두려워했던 그 공포를 잊도록 만든다. 즉 에피쿠로스 유물론과 기독교적인 '두려움 없음FEAR NOT'이 인류로 하여금 벗어나도록 하고자 했던 복수심에 찬 신들에 대한 공포. 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체를 통해서이다. 보다 고차적인 형태에서 지양되기보다 청산된다면, 그 결과는 퇴행이 될 거이다. - 의식의 퇴행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 야만주의로의 퇴행.

   운명과 신화에서 나타나는 자연에의 속박은 전적으로 사회의 후견에 이끌리고 자기반성을 통한 어떤 자각도 이룰 수 없었던 시대, 주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대로부터 유래한다. 그 시대를 되돌리는 주분을 외는 집합적 실천 대신에 미분화된 상태라는 오랜 주문을 없애버려야 한다. 이를 연장하는 것은 자신의 이미지 속에서 타자를 억압적으로 형상화하는 정신의 동일성이다. 화해 상태에 대한 사변이 허락된다면, 객체와 주체의 무차별적인 통일성도 그것의 상반된 적대성도 그 안에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Subject and Objet>, 아도르노, 서동진(2018)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