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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이 잘린 손으로 당신 볼을 쓸어주며

공장장_ 2019. 3. 26. 13:59

겨울눈의 아린芽鱗

 

 

백은선

 

 

  열 손가락이 잘리는 꿈을 꾸고 일어난 날, 첫눈이 왔습니다. 눈 속에서 고요히 흔들리며 자리를 바꾸는 사물들. 나는 당신을 커튼 뒤에 놓인 안경이라 했습니다. 나 꿈을 꾸면서 그것을 받아 적었습니다. 잊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눈송이 하나하나, 귓속을 흐르는 느리고 우울한 음에 글자를 숨겨두었습니다. 손바닥을 맞대 조심히 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차가운 물을 마시고 바닥 핏자국을 가만 보았습니다. 누군가 비밀을 울부짖은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진 낙엽처럼. 당신을 썼스빈다. 더 자세히 보고 싶습니다. 이건 꿈이에요. 당신은 믿지 않습니다. 내 어깨를 꽉 움켜쥐고 흔듭니다. 나는 허공으로 자막처럼 흐르는 문장을 봅니다. 기울어진 글자들이, 움켜쥔 빛처럼 쏟아진다. 계속되는 것을 계속해야지. 멈춘 것을 멈추어야지. 눈물 속으로 둥글게 부풀던 소름처럼 양각된 잎사귀들.


  신호등 아래 당신의 두 귀가 노래합니다. 부를 것이 없어서 부를 것이 없어서 잠을 잤어요. 잠 속에서 잠이 들었어요. 당신이 나를 꺠웠지만 나는 겹겹의 꿈에 둘러싸여 안전해요. 아프고 황홀해요. 괜찮아요. 이 길은 끝도 없고 나무들은 계절을 위한 그물이에요. 운동장에서 당신의 무릎이 노래합니다. 가지 말아요. 손을 주세요. 일으켜 세워요. 고층빌딩 옥상에서 당신의 두 눈이 노래합니다. 당신의 발목이, 척추가, 손목이. 나는 사방으로 흩어진 당신들이 따로 또 같이 부르는 노래.


  천 미터 상공에 앉아 듣고 있어요. 커다란 퀼트 담요를 만드는 것처럼 그것들을 한데 묶어 다발을 만들어요. 아, 예쁘다. 내가 웃으며 말해요.


  가지 말지 그랬어.

  어디 갔었어.


  나 당신의 책 다 못 읽었습니다. 나 먹어요. 나 마셔요. 나 못 읽어요. 미안해요. 눈 와요. 창밖을 봐요. 새들도 없고 달도 별도 없습니다. 개들이 짖는 밤이다. 미친 것처럼 미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이 늦은 밤 푸른빛을 배달하나요. 목 잘린 몸이 욕조에 누워 있다.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공원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새로운 얼굴도 찾아야 합니다. 몸은 얼마나 소란스러운 경이입니까. 흘러내리는 물 - 하얗게 뒤덮인 검은 도로 - 발자국 위로 발자국 잊히지 않는 처방입니다.


  종려나무가 종려나무를 잊고,

  고목나무가 고목나무를 잊고,

  측백나무가 측백나무를 잊고,

  회화나무가 회화나무를 잊고,

  이팝나무가 이팝나무를 잊고,

  배롱나무가 배롱나무를 잊고,

  자작나무가 자작나무를 잊고,

  은사시나무가 은사시나무를 잊고,

  보리수가 보리수를 잊고,

  느티나무가 느티나무를 잊고,

  다시,


  나는 당신을 머리맡에 놓인 시계라고 했습니다. 작은 가지는 녹색이고 자르면 냄새가 납니다. 그 속에서 찾은 것이 있습니다. 무릎 꿇은 당신이 해맑게 웁니다. 눈송이, 뚝뚝 두 볼을 타고 떨어져요. 이것은 꿈입니다. 당신은 믿지 않지만. 열 손가락이 잘린 손으로 당신 볼을 쓸어주며, 거울 앞에 선 내가 말합니다. 계속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