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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것

공장장_ 2019. 5. 23. 16:19

   "데리다는 이 반아카이브적 충동이 아카이브의 핵심부에서 작동함을 주장함으로써 아카이브의 객관성을 보증하는 '근원'에 대한 통상적 믿음을 전복시키고자 한다. 즉 아카이브의 근원 혹은 출처는, 살아있는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의 것, 즉 죽음충동이라는 것이다. 데리다는 시작 혹은 근원에 대한 믿음은, 유령 같은, 토대 없는 허구에 의해서만 지탱된다는 것을 논증함으로써, 글쓰기와 그것의 취소 행위 자체가 아카이브의 가능성을 구성하는 궁극적 토대임을 주장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이렇게, 모든 '근원' '하나' '단일성'의 가능성은 그 단일성을 내부로부터 침식하는 타자성의 운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기원에 대한 열망'이 곧 아카이브를 움직이는 열망이다. 그러나 아카이브는 그 기원에 가닿는 것이 불가능할 때에만 구축될 수있다는 역설이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데리다는 아카이브가 "유령적(spectrale)"이라고 말한다.


   아카이브의 구조는 유령적이다. 그것은 선험적으로 유령적이다. 살과 피를 가진 존재도 아니고 부재도 아닌,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닌, 항상 다른 것을 지시하는 흔적 - 얼굴 가리개 덕분에 그 눈을 결코 마주칠 수 없는 어떤 것, 햄릿 아버지의 유령에 지나지 않는 것.


   할 포스터와 스벤 스키커는 아카이브 아트의 급진성을 모더니즘 아카이브의 총체성을 잠식하는 우연성과 불확실성의 증가로 설명하지만, 데리다에 따르면, 이러한 불확실성은 아카이브 자체의 내재적 구조 그 자체이다. 아카이브의 진리성을 보증하는 '아카이브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그것은 단지 유령으로서만 존재한다. 아카이브 자체를 파괴하는 죽음충동을 경유해서만 우리는 그것을 만날 수 있다. 죽음충동이 단지 아카이브의 완결성을 갉아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반아카이브적인 충동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충동 없이는 어떠한 아카이브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는 이 역설을 데리다는 아카이브의 근원적 태도로 본다.

   프로이트에게서 죽음충동은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 혹은 '유한성'의 충동으로 정의도었지만, 데리다의 재해석에 따르면, 죽음충동은 근원으로의 회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충동이며, 반복을 추동하여 아카이브의 미래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무한성'의 충동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데리다는 아카이브는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아카이브의 이 '미래지향적 성격'은 상투적인 행위, 즉 반복에 의해서 드런다. 이런 점에서 아카이브는 보존적이면서 창설적이고, 보수적이면서 혁명적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예루살미의 집요한 질문처럼,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이 반복되기에, 미래는 개방된다. 데리다에게서 아카이브의 미래는 '글쓰기 장면의 반복' 그 자체에 의해 가능해진다. 데리다는, 아카이브가 겨냥하는 미래는 단지 반복에 의해서만 열린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상투적인 창조성의 개념에 의문부호를 던진다. 이런 시각에 의하면, 동시대 예술의 성격을 규정하는 '탈근대적 아카이브'는 근대적 아카이브의 외부가 아니라 그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은밀히 작동하기 떄문에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이 은밀한 존재를 어떻게 가시적으로 드러낼 것인가 하는 것이 개별 작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조선령, <아카이브와 죽음충동 : 데리다와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