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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조용히 아닌 척하고 망해가는 것보다는
공장장_
2019. 12. 30. 02:10
"조짐은 늘 있다고 박조배가 말했다.
조짐?
d는 박조배를 돌아보았다. 매연 때문에 눈이 몹시 뻑뻑했다. 유사시라는 말은 비상한 일이 벌어지는 때라는 뜻인데 비상한 일은 늘 일상에서 조짐을 보이게 마련이라고 박조배는 말했다. 갑자기.....라는 것은 실은 그다지 갑자기는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불시에......라는 것은 내 생각에...... 우리가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 일상을 말이다. 일상에 조짐이 다 있잖아. 전쟁을 봐라. 맥락 없는 전쟁이 없고...... 방사능도 마찬가지, 원전이라는 조짐이 있으니까 유출도 있는 거잖아. 지금도 그렇다. 내게는 언제나 지금이 그래...... 지금은 꼭 전간기 같다. 1차대전과 2차대전, 두개의 거대 전쟁 사이엔 조짐이 아주 충만했지. 그런 조짐을 느껴. 세계가 곧 한번 더 망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는데 그게 굉장히 확실하다. 또 망할 것 같고 이번이 되게 결정적일 거 같다는...... 그런 예감이 있어. 너 전각기 예술가들의 작업을 봐라. 특히 음악 하는 사람들, 클래식 재즈 할 것 없이...... 종말을 앞둔 사람들처럼 노래하고 연주를 해. 그들은 확실히 뭔가를 느낀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내가 지금 느끼는 것, 대기 속에서 다가오는 재앙을, 나는 지금이 그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한마디로, 직전이고...... 그래서 이런 광경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며 박조배는 장통교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턱으로 가리켜 보였다.
이 상황을 봐라. 얼마나 투명하고...... 얼마나 좆같냐. 그리고 그 좆같음이 눈에 보이잖아? 그냥 조용히 아닌 척하고 망해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황정은, <<디디의 우산>>, pp.129-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