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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한 미래는 없다

공장장_ 2017. 8. 7. 09:38



이 곡의 제목은 No Future이 아니고 God Save the The Queen이다. 



"God Save The Queen"

God save the queen
The fascist regime
They made you a moron
Potential H-bomb

God save the queen
She ain't no human being
There is no future
In England's dreaming

Don't be told what you want
Don't be told what you need
There's no future, no future,
No future for you

God save the queen
We mean it man
We love our queen
God saves

God save the queen
'Cause tourists are money
And our figurehead
Is not what she seems

Oh God save history
God save your mad parade
Oh Lord God have mercy
All crimes are paid

When there's no future
How can there be sin
We're the flowers in the dustbin
We're the poison in your human machine
We're the future, your future


God save the queen
We mean it man
We love our queen
God saves

God save the queen
We mean it man
And there is no future
In England's dreaming

No future, no future,
No future for you
No future, no future,
No future for me

No future, no future,
No future for you
No future, no future
For you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의 미래 이후를 읽고 있다. 저자는 20세기를 미래를 신봉한 세기로 규정한 뒤 그러나 이 노래가 나온 1977년을 기점으로 미래의 신화가 무너지고 미래는 없다는 명제가 창궐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이 명제 혹은 선언이 이렇게 오래된 것이 놀랍기도 하고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가사 중에 인상깊은 것은 We're the future이라는 부분인데 이것은 정확히 문학의 기쁨에서 언급되었던 것이고 흔한 문구지만 아하 이거의 패러디였나 싶다. 책은 미래와 내일을 구분함으로써 미래를 탈신화화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미래는 명백한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 구성물이자 투사물이다. 신학적 문화의 영역에서 살았던 중세인들에게 완전함이란 신이 우주와 인류를 창조한 과거에 속한 것이었다. 따라서 역사적 존재는 낙원에서의 추방, 버려짐, 본래의 완전함과 단일함의 망각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미래에 관한 신화는 근대 자본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등장했다. 근대 자본주의 경제의 팽창과 그에 딸느 지식의 팽창이라는 경험에서 말이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생산 모델의 독특성이 낳은 가상효과이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세계지도를 다시 그리기 시작한 이래로, 즉 근대가 시작된 이래로 근대성이란 세계의 한계를 확장하는 것이라 규정됐으며, 현재 자본주의 경제의 독특성은 바로 물질적 재화와 지식 영역의 끊임없는 확대로 이어지는 잉여가치의 축적에 있다.

1850년부터 1950년 사이에 미래에 관한 신화를 최고조에 달했고 맹신 이상의 것이 되어버렸다. 미래에 관한 신화는 경제 성장이라는 현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인 '진보' 개념에 기반한 진정한 신념이 된 것이다. 정치행위도 진보하는 미래라는 이런 믿음의 견지에서 재구성됐다.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 근대 정치이론의 서로 다른 일파들이 다음과 같은 공통의 확신을 공유한다. 즉 현재는 암울하지만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확신을 말이다."(34-35)


마지막 문단이 흥미로운데, 즉 20세기의 모든 이데올로기들에, 그것이 극우건 극좌건, 내재된 동력이 암울한 현재-밝은 미래라는 경사로에 근거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반대로, 미래가 '밝은 미래'의 축어가 아닌 이상 이 모든 이데올로기들은 힘을 가지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이러한 찜찜함이 나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결합된 것으로서의 미래에 대한 찜찜함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없는 장소로서의 유토피아를 점하고 신화가 되어 현재를 잡아먹기 위해 미래는 디스토피아와도 결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래주의 선언도 이름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 내용은 처음 봤다. 또 놀라웠던 것은 전쟁에 대한 찬미와 여성에 대한 혐오가 너무 당당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와 보면 이게 '밝은' 미래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저자에 따르면 전자는 경제와 속도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는 정치적 심미화의 극점으로서, 후자는 자본에 좌절하고 모욕당한 남성적 나르시시즘이 겪는 우울의 뒤틀린 표상으로서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