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서지고 열리는
정결
안미옥
구부러진 말을 깊게 묻어둔 얼굴. 매일 비틀린 침대에서 잠이 든다. 고백은 얼룩 같고. 가라앉기 위해 돌을 모으는 손.
나는 한 방향으로만 가는 눈과 귀를 가졌다. 점점 더 제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부풀어오르는 식빵을 뜯으며
듣고 있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은 진심과 멀어지는 진심. 뿌리가 아래로 흐른다. 점액처럼, 불길한 꿈처럼.
나는 깨끗한 손을 본 적 없다. 뼈와 칼을 구분할 수 없다. 둥근 탁자와 둥근 무덤.
거울이 잠깐씩 놓치는 것. 슬프고 비참한 것.
진창이라면
늪에 빠졌다면
도와줄 수 없다는 말과 도와달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내가 했던 말들이 쏟아진다.
발목에서 무릎,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살. 수초에 걸린 새의 발. 다 담을 수 없는 그릇.
덤불을 걷으면 덤불이 나온다. 나는 녹지도 얼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못하고.
정전
안미옥
목조 계단에 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빛에 휘둘린 얼굴이었다
무덤덤한 마음 안쪽에서
찢긴 것들이 쏟아져나왔다
돌보지 않고 끌고 온
썩은 나무토막 같은 것
매일 모르고 살겠다고 결정하였다
결정을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그러면 믿게 된다
검은 연기를 가둔 창문에겐
연기를 내뿜는 것과 연기를 견뎌내는 것
무엇이 더 마음 편할까
혼자 있을 때의 표정을 들킨 줄도 모르고
얼굴을 통과하지 못하는 대답들을 늘어놓고서
트럭과 사과
비틀리고 뒤집히고 모른 체한다
전부를 알았다 해도
문 앞에 누운 개는 흰 눈을 뜨고 있다
앵무새의 창은 앵무새에게로 열려 있다*
*앙리 미쇼, <단편들>
까마귀와 나
안미옥
우리는 잘 갈린 얼음처럼 미끄러진다.
감정과 바꿀 수 있는 빛깔을 찾아보자고 약속했었지. 너는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이 물에 빠진 자기 발을 꺼내지 못해 쩔쩔매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옆을 지나쳤다. 그의 검은 신발. 너의 검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씨앗이 전부 썩어버린 빈 밭에 서 있는 것이 네가 아니듯. 겹겹의 그림자를 찢고 있는 것이 네가 아니듯.
너는 나를 믿는다고 했다.
귀가 밝아 슬퍼지는 마음처럼, 나는 찾은 적 없던 것을 찾게 될 것 같다. 머뭇거리면서, 계단을 뒤적이는 손끝.
연못엔 금붕어가 부케처럼 모여 있고. 정원엔 감춰진 것이 많다.
너의 검정은 절반의 통로. 안도 바깥도 아닌 자물쇠 틈에 있다. 누군가 불길한 팔을 뻗을 때, 간결하고 간소한 마음이 되는 것.
우리는 부서지고 열리는 어린잎을 만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