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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우리는 자꾸 마주칠 테니까
공장장_
2017. 9. 25. 14:01
당신은 운 것 같아
장수진
수업이 끝나면 안 돼
교실 밖으로 나가 구름 도서관 위에서 몸을 던질 것 같아
당신은
상투적인 하루를 싫어하니까
그래, 죽는다면
잘 정리된 철학 서적 위에서 날아오른다면
조금은 다른 오후가 되겠지
누군가 당신을 보겠지
내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온 내가
무의미한 설거지에 지쳐
잘 가요, 또 오지 말아요
가난한 내가 가난한 자를 천대하는 마음으로
정말 죽고 싶어
술과 안주와 흘러간 가요 속에서, 돈 몇 푼 오가는 생을 깔보며
나는 말했지
노동이 끝나고 책을 보는 건 불가능해
전태일은 정말 위대하지 않아?
새벽 두 시쯤
나는 칼끝을 한 번씩 만져보았지
아무렇지도 않았고
호프집 이모는 매일 내게 뜨거운 찌개를 끓여주었지
김 해서 밥 먹어라
당신은 조금 운 것 가아
시리아의 난민과
타국을 떠돌다 죽은 친구의 친구를 생각하며
혼자 남은 노모와 쓸쓸히 죽은 아버지
간밤에 자두 씨를 삼킨 작은 개 때문에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아무리 시시덕거려도
구청과 싸우거나
독서 모임에 나가 간신히, 몇 마디 한들
죽은 아이를 건네며 말이 없던
여인의 눈 속에서
헤어진 우리는 자꾸 마주칠 테니까
눈부신 아침에 고인 그날의 슬픔을
한 입씩
떠먹여주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