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걷을 수 없는 장막이
나는 창희가 다시 잠이 들려고 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숨을 헐떡이고 창희야 눈을 떠 봐 우리가 상수가 있는 무대에 앉을 수 있을 거야. 혹은 공원으로 다시 갈 수 있다. 공원에 여전히 나는 누워 있고 너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있고 내가 가져온 나의 셔츠는 왜 이렇게 큰지 알 수 없지만 커서 너도 앉을 수 있다. 그곳에서 나는 바르셀로나의 이야기를 다시 해볼 것이다. 손이 잘린 여자애의 나머지 이야기는 나는 너를 다시 흔들어 깨우며 해야 할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몇 가지가 더 있어. 기차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늘 흥미롭지. 밤거리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여자에게 형사는 말을 걸지. 그리고 또 애인을 잃은 남자는 복수를 꿈꾸고 그것을 실행할 것이고 나는 너를 너의 손목을 부잡고 한편으로 아주 작은 한편 이것은 정말 작은 한편으로 네가 스웨덴에 있을 것이라고도 굳게 믿는다. 너는 거기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고 수년 후에 우리는 공항에서 공항의 카페에서 그곳은 작고 둥근 테이블만 있었는데 만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유럽 어느 나라에서 혹은 잠시 귀국한 너를 서울에서 만나게 되며 그때 우리는 상수가 있는 상수가 아주 잘 보이는 극장의 객석에 앉아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창희의 손목을 잡고 점차 창희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큰 소리로 봐 이렇게 손목을 탁탁 잘라버린 거야 새어머니가,라고 말을 하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어떤 벽이 있을지도 몰라 커다란 장막이 그러나 걷을 수 없는 장막이 하지만 창희에게는 끝이 나지 않을 이야기를 그러나 모든 이야기의 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렇게 되었다. 창희와 어색할 시간조차 없이 갑자기 흘러와버렸다 우리는 이렇게. 창희를 흔들며 다시 상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창희의 손목을 잡은 채로 그 애의 몸을 흔들며 눈을 떠 이것 봐 이것 봐 말을 하면서. (<정창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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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 옆으로 돌아가 앉았다. 바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주인은 우리에게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또 커피네? 주인은 방금 커피메이커에서 내린 커피를 건네주었다. 커다란 머그컵을 손에 쥐니 손 안이 따뜻해졌다. 방금 빗방울을 모으던 손바닥이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나는 가방 안의 수첩을 꺼내 괜히 뒤적거렸다. 핸드폰도 확인했다. 내보일 만한 것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해나는 가방에서 사탕 껍질 같은 걸 버리려고 꺼냈다. 전단지도 꺼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유인물 같은 것이었다. 이거 누가 묘역에서 나눠주었다. 그런데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나만 받았어. 나는 구겨진 종이를 건 네받았다. 시였다. 나는 몇 년 전 버클리에서 해나가 내게 시를 건네주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김남주의 <학살2>였고 나는 그것이 60년대 후반 남미의 상황을 그린 시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5월이었고 두 번째 시를 받게 되는 때도 5월이며 그 사이로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 중간에 교토가 점처럼 찍혀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공기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3년 전의 시선으로 3년 후를 보았으며 내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웠는데 그 사이를 지나는 바람이 그대로였으며 사람들은 음악을 이야기하고 나는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그것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들 중 하나였으며 나는 누가 죽이고 누가 죽고 그리고 아주 많은 것들이 남아 있고 그런 것들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시간은 그 사이를 바람처럼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두 밤은 습기가 없는 상쾌한 밤이었고 나는 해나로부터 시를 받는다. 겹쳐지는 밤이었다. 나는 종이를 접어 손에 들었다. 커피와 맥주를 번갈아가며 마시다 종이를 펴 테이블 가운데에 두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읽었다. 김정환의 <오월곡>이라는 시였다. 우리는 검지로 한 줄 한 줄 읽었다. 나의 검지 옆에서 해나의 검지가 움직였다. 나의 검지는 해나의 검지를 밀듯이, 해나의 검지는 나의 검지에 붙어있는 듯한 모양으로 움직였다. 우리가 시의 끝 부분인 "은밀한 죄악의 밤조차 진저리쳤던 대낮이었습니다"라는 부분에 이르자 두 검지는 종이를 두드렸다, 툭툭 하고. 서로의 손가락도 두드렸다. 손가락을 두드릴 때는 종이를 두드릴 때 같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는 펜을 꺼내어 이전에 해나가 했던 것처럼 줄을 그었다. "우리들 가난의 공동체여"라는 부분과 "제3세계여 공동체여"라는 부분이었다.
우리들 가난의 공동체여 제3세계의 공동체여
(이 둘은 이어진 부분은 아니다)
공동체는 community, 제3세계는 third world 해나는 영어로 적는다. 공동체와 제3세계는 몹시 세계 공용 단어 같아서 그 두 단어에 밑줄을 그은 김정환의 시는 김남주의 <학살2>처럼 꼭 광주의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몰라 이건 60년대 남미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모든 명확한 세계들이 내게서 장막을 치고 있었다. 해나는 그때 버클리 대학 근처 카페에서 누군가 광주가 어디 있지? 하고 물었을 때 광주의 위치를 정확히 짚었다. 아까의 그 검지로, 대충 그린 한국 의 지도에서 여기야 하고 광주를 짚었다. 누군가 massacre의 뜻도 물었는도 또 다른 누군가는 쉽게 설명해주었어. 잔인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 한국어로는 뭐니? massacre, 학살하다. 대학생은 각주를 달듯 massacre에 줄을 긋고 그 밑에 적었다. 학살하다 하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러면 brutal은 한국어로 뭐니? 아 그건 잔인하다. brutal한 방 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게 massacre. 나는 그런 명확한 세계에 없었다. 마치 아주 복잡한 지도를 보고 있는 것처럼 거기는 어디지? 하고 들여다보아야만 했는데 그렇다고 무언가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들여다보는 사람이었으므로 당사자는 아니며 또한 명확한 세계의 시민도 아니었다. 내 앞에는 장막이 있고 나는 장막을 걷을 수 없으므로.(<그럼 무얼 부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