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라디오의 태양이 떠올랐다
일어나라 라디오의 태양이 떠올랐다
신동옥
별 하나 태워버릴 불꽃 하나 주시오. 그 불꽃으로 우리의 마지막 담배를 태워 물겠어. 우리는 방패도 없고 곤봉도 없고 불도 없이 담배를 입에 문 수도사들이니까. 없애버려야 할 오물더미 하나 던져주시오. 그 거름더미에 앉아 알을 낳겠어.
우리가 죽으면 이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떼어 거기 눕히고 열 손가락을 실에 묶어 자주 노래하던 나무와 새와 풀 나무와 꽃나비와 기타에 매어줘. 문장의 안뜰에 듬성듬성 놓인 포석을 디디고 날아오르는 천사가 되겠어. 천사는 나비 떼가 되어 당신의 머리 위에 흩어질 것이라오.
당신은 어쩌다 혼자가 되었나? 그건 당신이 사는 세상을 묘사하려 하지 않았으니까 삶은 가혹해지고 무관해지고 당신은 결국 혼자가 된 거지. 당신은 이용되어왔고 당신은 진술당하고 있어. 우리는 묘사하고 묘사하고 또 묘사했지. 우리의 묘사는 비밀하게 운용되어왔어.
한 때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저 먼 시베리아의 검은 이끼 아래 아이슬란드의 얼음불구덩이 속에 내던져지기도 했어. 얼어붙은 땅 위에 꽁꽁 언 나무에 묶여 열손가락을 꺾어가며 줄이 떨어진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지. 그럴수록 우리의 운지법은 더욱 막강하고 위험해져갔어.
세상에 연주하지 못할 곳은 없네. 외로이 비밀스런 고문을 당하는 감옥 맹수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콜로세움 혼자만 열에 들떠 성기를 비벼대는 골방에서조차 천사의 날개는 나비 떼가 되어 당신 머리통을 날 테야. 목소리는 말랑말랑한 빵이 되어 식탁에 놓이고 문장은 공명통을 열고 당신의 구두코에 이마를 조아리겠지.
우리가 연주할 때 당신의 삶은 애도를 보탠 연시를 써야할까 증오를 녹인 혁명구호를 써야할까? 우리가 '나의 붉은 노트'를 연주하면 당신은 '나의 푸른 각주'로 고쳐 읽어줘. 그것이 문장의 운명, 누군가 열렬히 사랑했고 누군가 열렬히 증오했고 누군가 노래의 마지막 도돌이표 속에서 숨을 거두네.
여기 지치고 고단한 한 남자가 낯선 길 위에서 트럭에 악기를 싣고 있소. 트럭은 구시가지를 벗어나 사막을 달리고 남자는 상상하지, 언제부턴가 쌓아올린 고단한 벽에 친 못에 걸린 당신의 표정을 금세 사랑받고 금세 잊히고 금세 버려지는 희디흰 벽에 얼룩진 알 수 없는 크기의 샛노란 먼지를. 그 얼룩덜룩한 음표를 이으면
지구에는 몇 개의 거리가 도사리고 있을까? 이 별 어딘가에는 지치고 고단한 문장 연주자와 삶을 바꾸고 싶어 하는 당신이 있겠지. 당신은 발바닥이 두꺼운 노을 밑을 지날 테고 당신의 목덜미에서는 바람 냄새가 날 거야. 당신은 루게릭병에 걸린 기타리스트처럼, 잔칫상을 앞에 두고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지친 미식가처럼
손목을 오들오들 떨며 알코올로 소모한 불안의 모래를 헤아리겠지. 그러고는 한꺼번애 이천 개 상처를 게워내다가 기억을 나란히 세워놓고 복제하다가 이천 년째 쏟아지는 편두통을 잃다가 코털에 휘감기는 문장에 블루스 속에서 깨어나겠지. 우리는 노래하고 노래하고 노래하네 오로지 당신만을 위하여.
우리의 병원 지구, 한 구석에는 침묵이 졸고 있네. 우리는 파랗게 멍든 심장을 꺼내 당신에게 선물하네. 이천 년째 계속되는 당신과 우리들의 즉흥연주 속에서 당신과 침묵의 에로틱한 에고이즘 속에서 우리는 정식으로 당신에게 회원명부를 송부하네. 세상 모든 문장연주가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라디오의 태양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