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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친절하지 않아 정말 친절하지 않아

공장장_ 2017. 10. 21. 17:14

데   지 : 그들은 신이에요.

베랑제 : 데지, 너무 과장하지 마! 그들을 잘 살펴봐!

데   지 : 베랑제, 질투하지 말아요. 날 용서해 줘요. (그녀는 다시 베랑제에게 가서 껴안으려고 한다. 이번엔 베랑제가 그녀를 뿌리친다.)

베랑제 : 우리의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확인했어. 더 이상 언쟁하지 않는 게 좋겠어.

데   지 : 제발, 천하게 굴지 말아요.

베랑제 :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데   지 : (등을 돌리고 있는 베랑제에게. 베랑제는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우리의 공동 생활은 이제 불가능해요.

(베랑제가 계속해서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데지는 “그는 친절하지 않아. 정말 친절하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문쪽으로 간다. 그녀는 밖으로 나간다. 그녀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베랑제 : (계속해서 거울을 바라보며) 어쨌든 인간은 그렇게 보기 흉하진 않아! 그렇다고 내가 저 아름다운 무리들 속에 끼여 있지도 않아! 데지, 날 믿어 줘! (그는 돌아본다.) 데지! 데지! 어디 있어, 데지! 당신까지 가면 안 돼! (...)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화난 모습으로 문을 잠근다.) 누구도 날 데려갈 수 없어. (그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닫는다.) 너희들은 날 데려갈 수 없다구. (그는 코뿔소의 머리들을 향해 말한다.) 결코 너희들을 따라가지 않겠어, 너희들을 이해할 수 없어! 난 내 모습으로 남겠어. 난 인간이야. 인간이라구! (그는 소파에 앉는다.) 계속 이 상태로 있을 순 없지. 데지가 떠난 건 아무래도 내 잘못이야. 그녀에겐 내가 전부였는데... 그녀는 어떻게 될까?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하나 더 생겼군. 그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어. 최악의 상황도 가능해. 괴물들의 세상에 버려진 불쌍한 아이 같으니! 아무도 그녀 찾는 일을 도와 줄 수 없겠지, 아무도... 이제 남아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다시 코뿔소 울음소리와 거칠게 질주하는 소리들이 들리고, 구름처럼 먼진가 인다.) 저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솜으로 귀를 막아야겠어! (그는 양쪽 귀를 솜으로 막는다. 그리고 거울 속을 보며 자신에게 말한다.)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변신이 원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까? 글쎄, 회복될 수 있을까? 그건 내 능력 저편의 헤라클레스에게나 가능하겠지! 우선 그들을 설득하려면 대화를 해야 해. 그리고 대화를 하려면, 그들의 말을 배워야겠지. 아니면, 그들의 나의 말을 배워야 하겠지. 내가 쓰는 말은 무슨 말이지? 나의 언어는 무엇이지? 프랑스 말인가? 꼭 프랑스 말이라야 하나? 그럼 프랑스 말은 뭐지? 그들이 원한다면 프랑스 말이라고 불러도 상관 없어. 아무도 그걸 반대하지 않을 테니까. 이 말을 쓰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내가 내 말을 이해하나? 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그는 방 한가운데로 간다.) 데지의 말처럼 그들이 옳은 건 아닐까? (그는 다시 거울로 가서 들여다본다.) 인간은 추하지 않아, 인간은 추하지 않아! (그는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내가 뭘 닮았지? 무엇을? (그는 갑자기 벽장으로 간다. 거기서 사진을 꺼내 들여다본다.) 사진들! 이 모든 사람들은 누구지? 빠삐용 부장, 아니면 데지인가? 그럼 이 사람은 보타르인가 뒤다르인가, 아니면 장인가? 혹시 내가 아닐까! (그는 또다시 벽장으로 간다. 거기서 두세 장의 그림을 꺼낸다.) 그래, 나를 알아볼 수 있어. 이게 나야. 나라구! (그는 그림들을 안쪽 벽면 코뿔소 머리들 옆에 건다.) 이게 바로 나야, 바로 나야. (그가 그림들을 걸자, 그림들 속에 노인과 뚱뚱한 여자와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이 초상화들의 추함은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띠고 있는 코뿔소 머리들과 대조를 이룬다. 베랑제는 그림들을 바라보기 위해 뒤로 물러난다.) 내 모습은 아름답지 않아! 아름답지 않아! (그는 그림들을 떼어, 화를 내며 방바닥에 팽개친다. 그리고 거울로 간다.) 아름다운 건 그들이야. 내가 잘못 생각했어! 아!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 불행하게도 내겐 뿔이 없구나! 이 반들반들한 이마, 얼마나 추한 모습인가! 이 축 늘어진 얼굴이 돋보이도록 한두 개의 뿔이 필요해! 아마 뿔이 돋아나겠지! 그럼 창피하지 않을 거야. 그들도 다시 만날 수 있고... 그런데 왜 뿔이 나지 않는 걸까? (그는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나의 손바닥은 너무 매끄러워. 손도 꺼칠꺼칠하게 변할까? (그는 웃옷을 벗고 속옷을 펼친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의 가슴을 본다.) 피부가 너무 부드러워. 아, 이렇게 하얗고 잔털투성이의 몸뚱어리! 나도 그들처럼 딱딱하고 멋진 검푸른 피부색을 가질 수 있다면! 잔털 없고 품위 있는 맨살이라면! (그는 코뿔소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노래는 얼마나 멋진가! 좀 거칠지만 확실히 매력있어! 그들처럼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코뿔소를 모방하려고 애쓴다.) 아, 아, 브르르! 아니야, 이게 아니야! 다시 한 번 해보자! 좀더 강하게! 아, 아, 브르르! 아니야, 아니야, 이게 아니야. 너무 약해! 이렇게 힘이 없어서야! 코뿔소 울음에 도달할 수가 없지. 단지 큰 소리로 외치고 있을 뿐이야. 아, 아, 브르르! 고함은 코뿔소 울음과는 달라! 아무래도 양심에 걸리는걸. 그들을 따라갈 걸 그랬어! 지금은 너무 늦었어! 저런, 내가 괴물이라니, 내가 괴물이라니! 원통해, 코뿔소로 변할 수 없다니, 결코, 결코...! 난 변할 수가 없어. 하지만 코뿔소가 되길 원해! 기꺼이 원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 부끄러워서 내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그는 거울을 등진다.) 내 모습은 얼마나 추한가! 원래의 자기 모습을 지키려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는 갑자기 펄쩍 뛴다.) 아냐, 그럴 순 없어! 난 그들과 대항해서 나 자신을 방어할 거야! 내 총, 총이 어디 있지! (그는 코뿔소 머리들이 고정돼 있는 무대 안쪽을 향해 돌아서서 외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항해서 나를 방어하겠어! 난 최후의 인간으로 남을 거야. 난 끝까지 인간으로 남겠어! 항복하지 않겠어! (<코뿔소>, 외젠 이오네스코,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