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편도 들어 줄 수 없어 슬퍼지는 이름
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
안웅선
난독증을 앓는 소년은
지도와 강과 유역만으로도 헤매고 있다
아이가 집을 나서는 이유에 대해서는 "빨래를 말릴 만한 충분한 햇볕이 없었다"라고 적당히 둘러댑시다 기꺼이 죽은 것들을 보고 몸이 약해지지만 보이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온 세계가 아이의 가출에 관심을 갖지만 아무것도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순회 판사는 부러진 망치를 찾아 연기 속에 앉지 (B와 V의 발음 사이에서 나는 미천해졌어요) 나는 배가 불러 가는 것을 감추기 위해 모래땅에 포도나무를 심고 노예를 산다
살아 있는 것만 생각하자꾸나 살아 있는 것만
아이는 아름다움만으로 기도를 드리고 친구들은 동전을 내밀며 기도를 팔지 않겠느냐고 묻겠죠
지붕을 가진 사람들과 마른 몸으로 식탁에 앉아 젖을 마시고 살아가는 것들 모두가 배부른 계절이 있습니다 배고픈 계절과 동물과 사람을 한 번은 죽이고 왔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잠시 F의 발음에 대해 고민한 뒤) 먼 데에서 죽은 자들과 관계하시는 분이여 아이에게 음식을 내어 주시고 노른자에는 소금을 얹어 주시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모두에게 친절하도록 바질을 뿌려 주시고,
다시는 몸을 긁으며 잿더미에 앉지 않도록
누구의 편도 들어 줄 수 없어 슬퍼지는 이름이 되도록
모두의 이름을 받아 적었으니 내가
몸이 약한 아이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밀연(謐戀)
안웅선
퐁듀 위에 코리앤더를 얹는 왕가의 감정
사제의 서품식
찻잔에서는 다리 건너 마을에서 태우는 시체 냄새가 났다
왕국은 교활하고 신들은 난생(卵生)의 혐의를 가지고 있었기에 살해될 운명 내 가늘고 하얀 발을 씻을 때마다 오래도록 걷지 않아 불안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랑은 오래되었기에 발열 없는 선언
전염병에 대처하는 방식대로 옷이 벗겨지고 그곳이 닦이고
애도는 어제나 새들의 날개 끝을 자르는 방법으로
태어나지 못한 아이가 오래도록 성기를 긁고 있다 자라나지 못한 음모를 그리워하듯
우리의 형(型)이 되었을 아이 나는 그 아이를 반대했다
율문(律文)과 기도가 질척이는 구멍을 찾아간다 긴 머리칼이 손가락에 말려 오면 나는 의미를 거절할 수 없으니
마리아라 불리우는 누이들이여 당신들의 젖가슴을 감싸안기 위해 입술로 세례를 전하는 사제가 되어야 했을까요
내 모든 변명과 기도에 성상(聖狀)의 표정들이 전염된다
발가벗고 저주의 눈빛을 씻는 아이들에게서 코리앤더 향이 퍼진다 왕국의 모든 신전이 종을 울리고 날아가버리는 불구의 새들
둥지에 남겨진 변명을 오래 품고 있어도 태어나는 것은 없었기에 나의 신전에는 누구도 비밀을 고백하러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