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바닥이 너를 쓰러뜨릴 것이다
"죽음 - 내가 너에게 말하는 죽음 - 은 네가 추락하여 뒤따라갈 그것이 아닐, 외줄 위의 네 등장에 앞서 나타나는 그것이다. 네가 죽는 것은 사다리를 타고 외줄로 올라가기 직전이다. 춤을 출 인간은 죽게 될 것이다 - 아름다움을 모조리 실행하기로 결심하고, 그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을 때. 네가 등장하면 창백함 - 아니다, 나는 공포가 아니라, 그 반대, 그러니까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을 어떤 대담함에 대해 말하려 한다 - 어떤 창백함이 너를 뒤덮어버릴 것이다. 네 분장과 네 스팽글들에도 불구하고, 너는 새파랗게 질릴 것이고, 네 영혼은 납빛이 될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너의 정확성이 완벽을 기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 무엇도 더 이상 너를 바닥에 묶어놓지 않은 그런 상태에서 너는 떨어지지 않고 춤출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외줄 위로 등장하기 전에 죽을 수 있게, 그리고 시체 하나라 외줄 위에서 춤을 추게 신경 써야 한다."
"나는 네가 확고한 육체적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덧붙이려 한다. 서커스의 드라마투르기가 이를 요구한다. 그것은 시, 전쟁, 투우와 더불어 유일하게 살아남게 될 잔혹한 놀이 가운데 하나다. 위험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서커스는 네 근육이 어떻게든 완벽한 정확성으로 벼려지게 할 것이며 - 아주 사소한 실착도 불구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추락을 야기할 수 있다 - 또한 이 정확함이 바로 네 춤의 아름다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거라: 어떤 서툰 놈이 있어, 외줄 위에서 공중제비를 돈다, 그가 동작을 놓쳐 죽어버린다, 관객은 크게 놀라지 않는다, 아니 관객은 그러길 기대했거나,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나 거의 마찬가지라고. 그러니까 너는 말이다, 반드시 아름다운 방식으로 춤을 출 줄 알아야만 하는 것이며, 몹시 순수해서, 섬세하고 진귀하게 보일 몸동작을 갖추어야만 하고, 그렇게 해서 네가 공중제비를 시도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칠 때 관객은 어떤 우아한 존재가 죽음을 감수하고 있다고 불안해할 것이며, 거의 분개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네가 도약을 성공리에 마치고 외줄 위로 다시 안착하게 되면, 바로 이럴 때 관객들은 너에게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내게 될 터인데, 그것은 네 재주가 뻔뻔스러운 어떤 죽음으로부터 몹시 고귀한 춤꾼 한 명을 지켜내는 일을 방금 실현했기 때문인 것이다."
"네 분장? 과도해야 한다. 짙어야 한다. 머리카락까지 두 눈을 길게 늘여 위로 끌어올릴 정도로. 네 손톱은 칠해져야 한다. 정상이라면, 제대로 생각이 박힌 자라면, 그 누가 외줄 위를 걸으려 할 것이며 시로 저 자신을 표현하려 하겠는가? 지나치다 할 정도로 미친 짓이다. 남자 혹은 여자여야 하냐고? 온전히 괴물인 자. 분장은 훈련을 독특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독특성을 완화해준다: 그렇게, 치장을 한, 금칠을 한, 물감을 입힌, 그러니까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얼굴을 한 어떤 존재가, 타일 까는 인부들이나 공증 사무소의 직원이라면 절대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어떤 장소에서, 평행봉 하나 없이,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해서 보다 분명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등장하자마자, 구토를 유발할 정도로, 아주 화려하고 짙게 분장해야 한다. 외줄 위에서 네가 곡예를 시작하는 즉시, 사람들은 오로지 이 홍자색 눈꺼풀을 한 괴물만이 여기서 춤출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이런 괴물을 외줄 위에 내려놓는 것은 바로 이 독특성이라고, 우리가 절대로 가지 않을 - 오 신이시여 감사하니이다! - 곳에, 그 괴물을 있게끔 강제하는 것이 바로 이 가늘고 길게 그린 그의 눈, 색칠한 그의 양 볼, 금빛으로 물들인 손톱이라고,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말하게 될 것이다.
내 말이 좀 더 잘 이해되도록 애를 써보려 한다.
시인이 제 작품 - 무(無)에서 이끌어내어 무언가를 채워나가는 동시에 지각할 수 있게 하는 - 을 실현하기를 원하여 자신에게 필요하게 될 이 절대적인 고독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면, 그는 자신을 가장 위태롭게 할 다소간의 처지에 스스로를 노출시킬 수 있다. 시인은 그의 작품을 세상 가까이로 끌고 오려고 노력할, 순전한 호기심, 결곡한 우정, 온갖 권유를, 아주 잔인하다 할 만큼 멀리한다. 그럴 마음만 있다면, 그는 이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자신조차 정신을 잃을 정도로, 거의 질식해버릴 정도로 아주 시커멓고, 구역질나게 하는 악취가 제 주변에서 발산하도록 그대로 놔두는 거다. 물론 사람들은 그를 피할 것이다. 그는 혼자가 되리라. 그 어떤 시선도 그를 방해하지 않기에, 명백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저주는 모든 종류의 대담함을 그에게 허락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는 죽음과 매우 닮은 환경, 그러니까 사막에서 살아가게 되리라. 그의 말은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않으리라. 그 말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로도 향하지 않으며, 살아 있는 자에 의해서는 더 이상 이해될 수도 없게 될 것인 바, 그것은 삶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명령할 죽음에 의해 요청된 어떤 필요성이 될 것이다.
내 너에게 말했던 것처럼, 저 고독은 오로지 관객이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너에게 부여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너는 너 스스로를 다르다고 여겨야만 할 것이고, 또한 너는 다른 기법을 소급해내야만 할 것이다. 인위적으로 - 네 의지에서 생겨난 어떤 효과에 의해, 너는 세상에 대한 일체의 무관심을 네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만 할 것이다. 이 무관심의 물결이 차올라오는 정도에 따라 - 발끝에서 시작된 저 냉기가, 두 다리로, 엉덩이로 그리고 배로 퍼져나갔던 독배 마신 소크라테스처럼 - 저 냉기가 차츰 너의 심장을 움켜쥘 것이고, 얼어붙게 할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게 아니다. 너는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꼼짝 못하게 홀려야 하는 거다.
이 밤, 관객들이 외줄 위를 걷고 있는 한 구의 시체를 명확하게 구별해내게 될 때만, 그들이 기묘한 감정 - 경악의, 공포의 감정이리라 -을 느끼게 될 것임을 인정하거라!"
"오늘 저녁 왜 춤을 추는 것인가? 왜 융단 위 8미터의 조명 아래서, 외줄 위에서, 튀어 오르고, 뛰어넘는가? 그 이유는 네가 너 자신을 발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냥감이자 사냥꾼이기도 한 너는, 오늘 저녁 수풀에서 갑자기 너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몸을 빼내어 도망을 치기도 하고, 너 자신을 찾아가기도 할 것이다. 무대에 들어서기 전에 너는 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슬프게도 네 일상적인 몸짓 속에 뿔뿔이 흩어져, 너라는 존재는 있지도 않았다. 환한 낮에 너는 그것을 명령할 필요를 느끼리라. 매일 밤, 신발을 묶거나, 코를 풀거나, 몸을 긁거나, 비누를 사거나 하는 습관적인 몸짓의 세례 속에 흩어지고 사라진 너는, 오로지 너 자신만을 위해, 조화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외줄 위를 달리고, 거기서 네 몸을 꼬고, 거기서 네 몸을 뒤틀 것이다. 그러나 너는 오로지 한순간에 이르게 될 것이고 오직 어떤 한순간만을 포착할 것이다. 그것도 항상 저 죽음에 이르는 새하얀 고독 속에서."(<외줄타기 곡예사>, 장 주네, 조재룡 역, 밑줄은 인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