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아 봐 짜식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박덕규
애인은 밤마다 속삭인다 시집을 가든지 돈을 왕창 벌든지 해야겠어요
어느 경우든 실현성은 없다 애인은 먹고 놀자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먹고 놀 줄 밖에 모르는 아이를 업어 갈 얼간이가 어디 있어
먹고 노는데 돈 주는 곳은 없단다 타일러도 애인은 막무가내다
애인의 눈빛은 몽롱하다 나는 몽롱한 청춘을 즐기는 편이다
인생은 도박이니 시 쓰는 맛 또한 한 판 끄는 맛이다
이건 어때요 애인은 말했다
당신이 놀고 먹고 내가 시를 쓸께요
그건 안 돼 대저 인간에겐 하늘이 주신 천직이란 것이 있는데
어기면 잘 먹고 잘 살기는커녕 제 명에 못 죽는다
애인은 울상이 된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로군요
시집을 가든지 돈을 왕창 벌든지 해야겠어요
허허허 좋아 회의 끝에 얻은 꿈은 소중한 거야
열심히 살아 봐 짜식 애인은 놀고 먹고 나는 시를 쓴다
// '애인'이 전면에 드러나 있는 시지만 당연히 시를 쓰는 화자와 놀고 먹는 애인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3연과 4연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음미할 만하다. 나와 애인의 동질하지만 동일하지 않음이 상당히 격렬한 형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애인의 꿈은 시의 처음과 끝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화자의 태도가 바뀐 것은 그 꿈(의 실현성)이 아니라 '회의' 때문이겠다. 여튼 이 시잡(<<아름다운 사냥>>)을 이해하려면 화자보다도 애인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순정은 물결처럼
박덕규
내 어린 애인, 한 획 한자도 모르고서
장신 아저씨께, 아저씨 그 동안 안녕?
나는 수입 고추처럼 두근거리다가
큰 키 머리 받지 않게 조심하시고, 건강히 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우리 교실
저 허무주의에 불타는 여대생
일찌기 실리주의에 눈뜬 복학생들 뒤로
당구 잘 치고 공부 잘 치는 나는 때로는 과격한 아이
교수와 의견 충돌, 유리창과 시선 충돌,
진달래가 다 지고 라일락이 필 때는 한숨도 나고
내 친구 두 손 멱살잡혀 나올 때
그의 애인은 밤차로 상경하였고
내 별 위로의 말 할 줄 몰라도
술만 마시면 이 나라 이 겨레 침통할 줄 알았고
전봇대를 붙들고 서서 우는 뺨
달빛이 참아 보라고 어깨를 툭툭 치고
별빛 기다리라고 어깨 꾹꾹 누르고
아, 어디론가 멀리멀리 흐르고 싶었어
깨고 나면
기다리는 일은 이루어졌고 아슬아슬
졸업식날은 다가오고 있었지만 언제부터
왜인지 애인의 편지가 통 안 오는 세월 세월
참 영원한 눈물 나라
순정파 이 가슴은
기다림에 지칠 줄도 몰랐었다
내 키는 잘 자라 그림자 되고
사랑은 미움도 안 되어 버렸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