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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당신도 타자석에 서서 다가오는 공을 가만히

공장장_ 2018. 1. 27. 17:09

"그러면 중견수 앞의 라이너성 안타는요?"

"주자는?"

"주자라니?"

"그러니까 1루에 주자는 있었습니까? 아니면 1루 3루에 주자가 있었습니까? 아웃 카운트는 몇 개나 됩니까? 아아, 그리고 득점차는 1점입니까, 아니면 2점입니까? 그것을 모르면 상대방의 수비 태세를 몰라요. (...) 선생님 그게 확실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연상을 할 수가 없어요. '중견수 앞의 안타'라는 것은 존재 안 해요. 안타라는 것은 더 구체적인 것이라서요. '구체적' 이에요. 아시겠어요, 선생님? 그래도 연상을 하라고 하시면, 해도 좋아요. '중견수 앞의 안타'라고요? '중견수 앞의 안타'로부터 나는 다른 '중견수 앞의 안타'를 연상합니다. 그 다른 '중견수 앞의 안타'는 또 다른 '중견수 앞의 안타'를 연상시킵니다. 모든 '중견수 앞의 안타'는 연결되어 있어요. 선생님, 당신은 내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럴까요? 내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사이드스로의 좌완 투수 정도예요. (...) 그것이 '불안감'이지요? 아닙니까? 한번은 당신도 타자석에 서서 다가오는 공을 가만히 쳐다봐야 합니다. 이런 곳에서 묘한 그림을 보이거나 최면술을 걸거나 하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됩니다. 투수는 정직해서요, 던지는 공에 그 사람의 속이 다 들여다보여요. 타자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건 없어요. 영화나 소설보다도 훨씬 재미있죠.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 공을 쳐야만 하는 것일까 하고. 선생님, 나는 슬럼프 따위가 아니에요. 쳐야 할 공이 없을 뿐이에요. 그렇지만 왜일까? 왜 쳐야 할 공이 없어진 것일까? 선생님 아무리 기다려도 쳐야만 할 공이 안 오는 것이에요. 말로 잘 못하겠는데요, 그것이 쳐야 할 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야구는 말이죠,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이 연결을 끊으면 안 됩니다. (...) 내 팀의 주전 투수도 이 연결이 끊겼나 봐요. 그 때문에 심한 슬럼프에 빠져 버렸죠. 확실히 성적은 좋아요. 그렇지만 그런 것은 야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나는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죠. 그건 슬럼프예요. 76타수 3안타라도 나는 슬럼프가 아니에요. 나는 야구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쳐야 할 공이 안 오는 것뿐이에요. 선생님 저놈들에게 말해주세요. 마운드 저쪽에서 공을 던져 오는 너절한 투수들에게, 내가 칠 수 있는 공을 던지도록 말해 주세요. 그냥 던지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이 던지는 공이 맞아야 할 공인지 아닌지 잘 생각하고 던지라고 말해 주세요. 그러면 그놈들도 알 수 있을 거예요. 슬럼프는커녕 나는 지금 야구를 시작한 이래 최고의 상태입니다. 이렇게 기분 좋게 타자석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죠. 타자석에서 나올 때는 숙면을 취한 후처럼 상쾌한 느낌이 듭니다. 그동안 타자석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 못 할 정도예요. (...) 어디가 슬럼프입니까? 헤헤, 듣고 싶네요. 성적이라고요? 신경 안 써요. 언제까지나 이대로일 리가 없어. 그래, 라이프니츠가 말하고 있어요. 라이프니츠 말입니다. 나도 방금 들었습니다만. '실제 우리들은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상태, 두드러진 표상을 조금도 가지지 않는 상태를 우리들 자신 안에서 경험한다. 예를 들면 우리들이 기절을 했을 때라든가 꿈 하나 꾸지 않고 잠에 빠졌을 때와 같은 것이다. 이 상태로 들어가면 정신도 그냥 단자(볼)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되나 이 상태는 오래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은 거기에서 벗어 나오므로 역시 정신은 그냥 단자(볼) 이상의 것이라는 게 된다.' 이 다음이 궁금하네요. 내 정신이 공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말입니다. 헤헤, 그러니까 나는 걱정 같은 건 안 합니다. 안 하겠습니다."(다카하시 겐이치로)



// 'the 야구'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라고 하면 조금 많이 구리지만 다행히 그걸 묵인해줄 만한 파워가 있다. 사실 전부 집중해서 읽지는 못했고 인명이나 숫자가 많이 나오는 부분은 슥슥 지나갔다. 박솔뫼가 좋아하는 작가로 수년 간 알고 있었지만 손댈 생각을 못 하다가 집어들었고 이것이... 00년 이후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이 상당해 보이는데, 당연히 박민규도 읽었을 테고 그보다 읽으면서 내내 후장사실주의자들의 페이퍼시네마가 생각났다. 정확히는 이준규가 "내가 졌다"하는 그 장면이. 그리고 시인들도 몇. 아즈마 히로키도 다시 읽어봄 직하고. 차라리 미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출간으로붜 정확히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불편한 데가 없지는 않고 이렇게 거칠어서야? 하지만 더 매끈하고 위대한 건 학자들에게 맡기자. 우리는 각자의 야구를 찾아 정신병원으로 초등학교로 떠나면 되고. 88년 한국에서는 어떤 소설이 쓰이고 있었을까? 하일지도 백민석도 아직 없던 그 시절에 무엇이 있었던가? 고매하신 소설가들과 기형도밖에 생각이 안 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