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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것을 윤리라고 부를 수 잇다면

공장장_ 2018. 2. 12. 09:29

"그런데 왜 하필 윤리인가? 왜 우리는 문학에 대해 말할 때 윤리를 말하는가? 좀더 구체적으로, 요즘 문학인들이 문학에 대해서 말할 때 윤리를 언급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흥미롭게도 그것은 문학의 위기에 대해서 말할 때다. 굳이 언급하는 것도 민망할 만큼 요즘 문학의 영향력은 보잘것없이 축소되었다. 문학은 학교로 상징되는 제도권의 권위로 연명하며, 소수의 교양 있는, 혹은 대중적인 독자들의 여가시간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구식의 여가활동이 되었다. 한편 교양 있는 독자들을 상대로 하는 (대중문학에 대항하는) 문학 시장은 대중문학 시장과 자신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 윤리를 곱는다. 한마디로 그 모호하기 짝이 없는 윤리성의 존재 여부를 통해 다른 하찮은 대중소설과 진지한 문학작품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윤리가 문학에 있어 일종의 알리바이로 쓰인다는 의혹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 문학계 사람들이 제발트의 글에서 요즘 시대에 흔치 않은 진정한 문학의 흔적을 보면서 열광하는 이유는 거기에서 문학이라는 사멸해가는 한 시장의 존립 근거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흔치 않게 세련된 알리바이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은 한줌밖에 안되는 지식인/예술가를 주제/관객으로 다루는 홍상수의 영화가 '사람이 되지는 못해도 짐승은 되지 말자'며 '최소한의 윤리'를 주장하는 사태와 연결해볼 수도 있다. 결국 이 윤리란 급진성을 잃어버린, 주류나 기득권과 다를 바 없이 보수화된 지식인과 에술가들이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는 알리바이가 아닌가?


다시 제발트의 글로 돌아와서, <<토성의 고리>>에서 주장하는 문학적인 윤리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잊힌 것들을 애도하는 것이다. 파국의 풍경에서 통증을 느끼고, 결국 여행의 끝에 진짜로 몸에 마비를 일으키는, 신음하는 마음이다. 그러니까 이 윤리라는 것은 일종의 마취제다. 마비시키고 중단시키는 윤리다. 제발트의 글이 소설과 에세이 허구와 비허구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여 있는 글더미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의 글이 가진 강한 문학적 윤리가 무언가 되기를, 어딘가 가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려는 인간의 광기가 낳은 것은 폭력이며, 폭력의 반복 속에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폐허의 세계다.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그것을 막으려는 의지는 자연스럽게 극단적인 회의주의에 도달하게 된다. 사실 이것은 2차대전 이후의 모든 지적/예술적 운동의 중심에 놓여 있는 회의주의다.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절대적인 회의가 해체와 거부를 거쳐 마비로, 그러니까 완벽한 교착상태로 귀결되는 것은 일견 논리적이다. 그러니까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그런데 비탄에 빠져 아무 데도 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마음을 윤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한가? 그건 회의주의를 가져온 원인세계를 망각한 채 회의주의 말고는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된, 일종의 종교가 아닌가? 혹은 '최소한의 윤리'를 주장하는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는 나르시시즘이 아닌가? 만약 이것을 윤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윤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문학뿐이다.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아무 데도 이르지 못하며, 고장난 기계처럼 문학만을 반복 호명하는 윤리. 그것은 문학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신하는,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을 문학에 대한 오타쿠적인 열광으로 전도하는, 지극히 자폐적인 세계관이다."(<<0 이하의 날들>>,김사과)




// 김사과의 타격은 늘 강하고 좁은데, 이런 걸 날카롭다고 하겠지. 나오자마자 읽고 재독하는 참인데 그 때 세 번 읽고 충분히 고민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시 읽어도 좋은 책이지만 어떤 책들은 그 순간 텍스트가 가하는 폭력의 순간에 기꺼이 뛰어들어 같이 나뒹굴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김사과의 산문(소설과 또 다르다)과 나뒹군다는 표현은 좀 어울리지 않지만. 여튼 더 나쁜 쪽으로를 읽다가 도무지 망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처럼 말하는 김사과의 정치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다시 꺼내든 책이다. 234부에 더 직접적인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지만 우선은 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가져왔다. 생각보다 냉정한 것이 예상 외이기도 했지만 다분히 '문학적', 즉 텍스트로 시작해서 텍스트로 완결되는 그의 소설 - 써놓고 보니 기묘한 데가 있는데, 곱씹어보면 나는 거의 SF처럼 여기고 있다 - 과 달리 여기서는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그런데 여기엔 부동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어떤 액션에 대한 담지는 없다. 액션이 없어도 우리는 정치적일 수 있을까? 우선 끝까지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