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지상 통치를 이론화하고 정당화하는
"아감벤은 지상의 통치로서 오이코노미아 신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삼위일체론, 제국-교회론, 섭리론, 천사론 등을 통해 분석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삼위일체설이란 신이 존재에서는 하나지만 위격에서 셋으로 분리된다는 교리인데, 이는 그노시스적 이원론, 즉 창조의 신과 구원의 신을 분리해서 전자를 사악한 신으로 증오하고 후자를 사랑의 신으로 섬기는 급진적 종말론에 대항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런 맥락에서 아감벤은 삼위일체설이란 신의 지상 통치를 이론화하고 정당화하는 장치라 말하면서, 성부(신)와 그의 계획을 지상에서 실현하는 집행자로서의 성자(예수) 사이의 구분과 분열을 봉합하기 위한 장치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결국 신의 재림으로 도래할 '종말=구원'을 기독교 교리에서 말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아버지 신의 계획이 아들인 집행자(두 존재는 하나의 신이다!)를 통해 지상에서 관철된다는 것은 창조와 구원 사이에 가로놓인 '중간기'가 신의 통치하에 있다는 뜻이며, 그런 한에서 지상의 구원과 종말은 분명히 오지만 그 구체적 국면이 오기까지의 기간(신에 의한 지상 통치)이 무의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즉 지상의 삶(현세)은 구원을 기다리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신의 계획이 실행되고 있는 유의미한 시간으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이때 종말과 구원의 구체적 형상은 기독교 교리에서 말소되고 만다.
예수의 부활 이후 구원의 도래까지 지상을 관리하는 사명을 가진 교회가 예수의 '신비한 몸'이라 표상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로마제국이 기독교 제국으로 탈바꿈하면서 지상을 관리하는 사명은 교회와 제국이 담당하게 된다. 아감벤은 이 교회와 제국의 통치론과 관료론을 분석하면서 어떻게 오이코노미아, 즉 질서와 관리가 통치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되었는지를 밝히느데, 그는 이를 섭리의 통치기술화 및 천사(성령)의 임무와 위계질서에 근거한 관료론을 해부함으로써 논증한다. 그렇게 하여 아감벤은 교회와 제국이 주도한 지상의 통치가 결국 인간을 관리하고 질서 정연하게 배치하는 '생명정치bio-politique'의 패러다임을 출발부터 핵심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주장이 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테제는, 서구의 인간은 고유한 의미의 '정치'가 아니라 인간과 사물의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질서/관리를 집행하는 '통치'만을 반복해왔다는 것이다."(<<종말론 사무소>>, 김항)
// 아감벤이 얼마나 문제적인지에 대한 감을 잡아본다. 다른 데다가 적은 거지만,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와 기타 등등 이원론은 모두 플라톤의 후손들이 아닐까? 반대로 서로가 서로로부터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은 뉴턴이 발견한 가장 오래된 미래가 또 아닐는지? 나는 오히려 거기서 '개인주의자들의 천국'이 발생했다고 믿는다. 거기서는 물物들 간에 위아래가 따로 없고 모두가 동격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말하자면 가장 '현재적'인 데가 있다. 그리고 그게 한계다. '불임'이라는 평가는 그런 한에서만 온당하다. 한편 과거는 그렇지 않다. 과거는 신이라는 중심점에 의해 모두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추세선을 그어보면 미래는 신의 완전한 소실 혹은 역-신의 영역인가 싶고... 벤야민(앙겔루스 노부스)은 미래로부터 파견 나온 사자가 아닐는지.. 뻘소리는 즐겁고 읽을 것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