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마침내 기쁨의 마소가 되어 자신들의 땅을

공장장_ 2018. 3. 6. 14:16

슬픔

 

 

김현

 

 

1


푸른 지붕 위에 소복에 눈이 쌓여

붉은 혼령이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산 사람들과 먹고 자고 먹고 잤다

산 사람들은 그것을 여자라고 불렀다


2


떠나가는 길이었다

기쁨의 입구에서 멀리

창밖에는 논과 밭

마소가 서너 마리

철수가 영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죄를 지었다

영희가 철수의 떨리는 얼굴에

손바닥을 올리고 들려주었다

한날 눈이 끝없이 내려

마음의 마소를 끌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

눈이 오지 않는 땅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남자는 여자의 마소를 축사에 가두어두고

여자를 흙으로 덮었다

여자는 남자의 땅에서 마소의 울음을

하염없이 들었다

자신의 마소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이름을 되뇌었다

마소가 늙어 남자의 밥상에 오를 때도

남자는 여자를 평생 사랑했다고 믿었으나

여자는 남자를 남자의 땅에 묻고

모든 것을 불태운 후에

새집을 짓고 새 여자들을 들이고

마소 없이

자신들이 밭을 갈아엎고 보리 씨앗을 뿌렸다

여자의 땅이 되었다


3


도착하여

철수와 영희는 수레를 끌고

황무지로 향하였다

한때는 누군가의 기쁨이었을 곳이나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그 땅의 끝에 푸른 지붕을 가진 집이 한 채

철수와 영희는 수레를 집안 한구석에 두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물은 나오고 전기도 들어와

철수는 치마를 벗고

영희는 브래지어를 푼 후에

몸을 씻고

사랑을 나눈 후에

서로의 녹슨 부위에 동백기름을 칠해주었다

잠이 들고


4


기쁨이 있었다

숲 한가운데에는 시간의 샘물이 있었고

그 물을 마시면 마소가 될 수 있다는 전설

철수와 영희는 아침마다 그 물을 마시고

붉은 약초를 캐러 다녔다

약초 한 보따리를 시장에 나가 팔면

일흔일곱 개의 동전

동전 네 닢으로 옅은 안개와 원고지를 사고

동전 세 닢으로 토마토와 새우와 후추

나머지 동전은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위해 썼다

한번은

철수와 영희가 약초를 캐러 가지 않았는데

영희가 뿔이 나서였다

철수는 뿔이 난 영희를 위해 소먹이를 준비하였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 꽃은 우리의 것이 아니야

그 풀은 우리의 것이지


그 꽃은 나타나는 것이 아니야

그 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


그 꽃은 기쁨을 위한 것

그 풀은 슬픔을 위한 것


뿔이 난 영희는 철수의 목소리를

다 먹고

자신의 뿔을 하나 떼어

철수의 머리에 붙여주었다


5


여자의 땅에서

여자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었으나

보리 씨앗이 사라지고

불이 나고

때때로 여자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때때로 아기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머지않아

여자들은 푸른 지붕 아래 모여

숨죽인 채 살았다

엽전 항아리에 담긴 엽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여자들은 말하기를 계속하였다

도둑이야!

불이야!

살려주세요!

눈이 끝없이 내려

푸른 지붕 위에 쌓이고

여자들은 하나둘

괘종시계 뒤로

옷장 속으로

바늘구멍으로

항아리 아래로

책과 책 사이로

들어가 벽을 보고 앉았다


6


한밤에

흰 벽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철수와 영희가 잠에서 깨어

사다리를 들고 황폐한 곳으로 나갔다

둘은 얼마 남지 않은 기쁨으로 사다리를 세우고

지붕 위에 쌓인 검은 눈을 두 손으로 밀어냈다

밤의 내면이 푸르러지고

철수와 영희는

음, 메

하고 소리내었다

읽어볼래?

영희가 철수에게 물었다

철수가 영희의 원고지를 시간의 샘물에 담갔다 빼자

안개의 색이 짙어졌다

살려주세요보다는

꺼져버려 하는 게 좋겠지

여자들은 푸른 지붕 아래 모여

약탈자들에게 활을 겨누었다

약탈자의 오른손과

오른발이 떨어져나갈 때마다 여자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차분하게 엽전을 세고

아이들이 말하기를 계속하게 하였다

철수와 영희는 마침내 기쁨의 마소가 되어

자신들의 땅을 스스로 일구게 되었습니다


7


지옥의 개들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숲에서 쫓겨난

철수와 영희는 서로의 입술을 믿음 삼아

다시 시작해보고자 하였다

수레에

괘종시계와 옷장과 바늘과 항아리와 책과

잉크와 원고지, 활과 활시위와

약초를 싣고

둘은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서

슬픔의 황무지로 향했다

다시 기쁨을 일구고 마소가 되기 위해서


8


영희는 철수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철수는 머리를 들어 영희를 보았다


끝없이 달려가는 현대의 열차 안에서

철수는 영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