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을 직접적으로 시키게 되면 재미가 없습니다
"저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작품과 삶은 일종의 피드백 작용처럼 계속해서 루핑되는 관계니까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작품과 삶은 맞물려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책은 사람이나 실제 사건처럼 당연히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관계를 같이 보는 것에 흥미가 있어요. 레이어가 늘 여러 겹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그걸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다룰 때 더 흥미롭고 재밌어집니다. 그런데 작가와 텍스트의 관계를 분리되었냐 아니냐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물론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어떤 예술 장르라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과 사회 사이의 영향 관계가 중요합니다. (...) 저는 실제 삶 역시 픽션이라고 생각합니다. 픽션이 삶을 지탱하지 않으면 삶 자체가 진행이 안 되지 않나요. 실제 삶에서 픽션을 빼면 인간은 언어 이전의 동물인 겁니다."
"요즘 들어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당연한 걸 몰랐던 겁니다. 그것 역시 언어적인 문제일 수 있는데, 언어를 사용하면 구분과 분리가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를테면 세계는 이미 픽션으로 이뤄져 있고, 우리가 픽션의 영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렇지 않고 사실의 영역이 따로 있다는 생각 역시 언어의 한계와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끊임없는 피드백 작용, '그걸 더 적극적으로 내가 하는 예술에서 드러내는 게 맞고, 더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그걸 어떤 정치적인 지점이라든가 예술사적인 지점에서의 의의와 연결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연결을 직접적으로 시키게 되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깊이의 차원에서 재현이나 인용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인용은 재현의 배치를 바꾼 재현이다. 그런 면에서 재현 역시 인용의 배치를 바꾼 인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현이라는 게 결국은 세계를 인용하는 거고, 세계의 어떤 인물을 인용하는 거고, 자기의 어떤 상상을 인용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사회에서, 문학으로 치면, 재현의 익숙한 형식이 있어요. 재현적인 형식이 있고, 인용은 인용의 형식이 있어요. 그런데 재현도 인용의 형식으로 쓸 수 있고, 인용도 재현의 형식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 형식 배치를 다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또 다르게 감각하잖아요. 그러니까 인용에 대한 수많은 비판들은 재현의 특정한 형식에 매몰된 결과라고 봅니다. 가령 인용은 저자의 권위에 기댄다거나, 원래 있던 말을 반복한다든가,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창조가 아니라든가. 여기엔 이분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재현은 진짜 창조 내면에서 오는 좋은 거고, 인용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두 개의 배치를 바꾸는 짓을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건 진실 여부가 아니라 효과입니다. 물론 효과만 있으면 어떤 거짓이라고 상관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냥 냉정하게 얘기하자는 거죠. 실제로 효과만 있으면 그게 거짓이라도 기능을 하잖아요. 꼭 그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빌렘 플루서적인 디지털 가상 세계까지 안 가더라도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케이스지만 트럼프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위험한 이야기지만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팩트나 진실에 집착하는 태도, 그걸 규명하려는 시도도 사실은 효과를 산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래서 소설가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저한테는 소설가라는 직함이 배치를 다르게 할 수 있는 요인을 주는 직함인 거지, 거기에 따라서 뭔가를 해야 된다라는 의무 의식은 전혀 없습니다.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것 같아요. "저는 글 쓰는 사람" 막 이렇게 자기와의 약속,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프로작가의 의식은 이런 거죠. 만 원을 주고 샀으면, 만 원을 주고 산 만큼의 재미를 드리고... 그게 즐거운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나오는 글만큼 재미없는 글이 없죠. 그렇습니다. 소설가라는 건 저에게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정지돈 x 강동호,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문학과사회>> 2017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