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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갈 것 같아 가슴에 돌을 얹어 달라는

공장장_ 2018. 6. 5. 12:30

멍든 물

 

 

김복희

 

 

한숨 돌립시다 잠깐 엎드렸던 것도 잊어버리고

추위와 어둠이 새벽의 진심이라는 것도 모르게

그렇게 합시다 그러면 됩니다

열에

꽃이 만든 열매가 열매가 버린 씨앗이 목에 걸립니다

물 한잔 마시고 합시다

뜨거운 물이 입속에서 차가워집니다

차가운 물을 받고 생각합시다

이것은 식은 적이 없다

이마는 한 번도 끓었던 적이 없다

힘낼까요 힘을 내서 이 맛을 알아봅시다

맛은 소리 없는 향으로 가득한데

무향도 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비에서 나는 먼지 냄새, 왜 자꾸 맛에서 무엇이, 말이 들린다고 합니까

들어 봅시다

한 모금 잠에서 깨어

장마철 하천가 풀처럼 무성해지는 마음

보도 위에 납작해진 지렁이 토막

작은 돌멩이처럼 꽃나무와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는 참새 무리

날아갈 것 같아 가슴에 돌을 얹어 달라는 시인을 생각합시다

낙과가 모여 있는 바구니를 봅시다

저녁이면 돌아와

친구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언제나 너무 바닥으로 끌어당겨 지는 그 마음과

한 봉지 장판 위에서 더 멍들어 가는 열매,

우산이 마르는 한밤

아래로

깊이

물을 내려앉힙니다 넘치지 않게 애쓰는 목과 어깨의 각도 때문에

내가 말해 주지 않는 생각 때문에

내게 말할 수 없는 그 달리기 때문에

아주 빨리 달려서 나는 것처럼 보이는 새의 두 발이

발끝을 세워 들어오는 귀가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내어 주는

천천히 마실 수밖에 없는 그

한 입술씩

축이는

물 한 잔에 대한 생각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