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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아보면 알아요 당신은
공장장_
2018. 6. 11. 00:15
10센티
김혜순
간혹 천사는 갇힌다
미쳐서
나는 남의 알을 품었었다고 쓴다
사전의 글자들 위에 까맣게 쓴다
새장에 앉아 쓴다
손을 잡아보면 알아요
당신은 새가 아니군요
당신은 더러운 손을 내미는군요
간수가 오면 나는 내 혀를 두꺼운 책 속에 감추어 둔다
어느 아침은 높이 날았고
어느 아침은 깊이 떨어졌다고
쓴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게요라고
쓴다
가다가 서고
가다가 울고
나는 내가 만든 세상에서는 멀리 갈 수 있답니다
노래도 아니고
메아리도 아니고
아주 멀지만 자유만 있는 장소에서
나는 그곳을 나는 새입니다
겨우 지상에서 10센티 떠오른 채
새장엔 미친 새
어느 밤하늘 날아가는데
너희의 화살이 심장을 꿰뚫어 푸르르 푸르르
떨다보니
하는 수 없이
새가 된 새
그 새의 신발끈은 풀어져 땅에 끌리고
그 새의 머리끈은 풀어져 측백나무를 칭칭 감고
하지만 나는 나는 것이 좋아
먼 길 떠나는 것이 좋아
모국어 사전에 혀가 물린 천사는
입속이 뜨거울 정도로 상냥하답니다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