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요? 도덕도 비도덕도, 선도 악도, 법도 무법도, 근거도 무근거도, 이성도 비이성도, 의미도 무의미도, 다 똑같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리니까요. 이렇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간단합니다. 참된 창조성이 남아 있습니다. 무근거 난센스 무의미 비이성 비도덕성이 멋지고 과격하고 '재미있다'는 천박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창조성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도덕, 새로운 법, 새로운 근거, 새로운 이성,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창조적이고 본원적이고 근원적입니다. 니체는 이것을 말했던 것입니다. 기존 가치에 얽매이는 것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고 해도, 기존 가치에 반항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유치하다고, 문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

  (...)

  하이데거는 무척 예리하게 말합니다. 모든 것에는 근거가 있고 이유가 있다는 것이 근거율이지만, '모든 것에는 근거가 있다'는 근거율 자체에는 근거가 없다고 말입니다. 근거율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도덕에 도덕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면 근거율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근거율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 사라져도 좋은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와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하튼 제가 스승으로 모시는 피에르 르장드르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상연'과 '연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근거율 자체에는 근거가 없다면, 근거율 자체는 논리적으로 논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근거율을 제시하려면... 나아가 근거가 있고, 이유가 있고, '왜'라는 물음에 대답이 있는 세계를 열어젖히려면-비논리적으로, 예술을 통해 미적으로 상연하고 반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왜'라고 묻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명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성상 또는 본래적으로 왜냐고 묻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이 '왜'라고 물을 수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묻는 것이 가능한 시공을 미리 열어젖혀야 합니다. 즉 참된 의미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마련해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근거가 존재할 수 있는 시공, 즉 근거율이 항상 존재하는 시공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미적으로 예술에 의해 설정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 새로운 무언가를 도입할 수 있는 창조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되풀이하여 다시 창조하고, 다시 노래하고, 다시 이야기하고, 다시 촬영해야만 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사사키 아타루, <<이 나날의 돌림노래>>)

Posted by 공장장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