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캠프

 

 

김지연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한 아침에도

   손을 뻗으면 허공에서는 손이 자라났다


   그런 아침에도 이불을 떠나고


   이것 좀 봐,

   자꾸 옆을 돌아보면 걷게 될 때


   손안에 들어와 갇히는 풍경이 많았다 손안의 세계를 움켜쥐고 걸었다 그것은 너무 가볍고 너무 작아서 작은 틈새로도 줄줄 흐르기 쉬워서 잡은 손에만 온 마음을 쏟아야 했다


   언제였더라 우리는 서울숲을 함께 걷고 있었지

   뿔도 없이 동그랗고 작은 머리를 가진 사슴 한 마리가 우리를 쫓아왔어


   녀석의 등을 쓰다듬으면 얇은 가죽 아래 움직이는 가느다란 여러 개의 뼈가 느껴졌지


   손가락에 닿는 손허리뼈를 어루만지며 걷는 동안


   잘못 뭉친 눈송이처럼

   손을 떠난 순간 바스라질 것 같던 그 등을 생각했다


   러시아에서는 사슴을 만나면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래


   손목의 끝에 달린 것이 그냥 사라진다면 함께 길을 걷기에 좋은 가볍고 따뜻한 손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잡은 손에만 온 마음을 쏟으며 옆을 돌아볼 수 없는 마음으로 걷다가 앞으로만 향하는 눈빛으로 걷다가 손목의 끝에 달린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피 흘리는 사슴 한 마리가 도로에 누워 있었다


   둘 중 하나는 나여야 했어


   사슴을 껴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기도는 등 뒤의 길을 지웠다


   사슴의 굳어가는 몸이 풀을 쓰러뜨리고 있다 발보다 먼저 길을 만들고 있다 누운 풀 위로 발이 겹쳐지고 있다 사슴의 아직 따뜻한 피는 내 발자국으로 굳어간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닷가 별장에 있었다

   친구들이 모두 둘러앉자

   바닷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꽉 잡아


   손은 잡으면 손목의 끝에 매달린 인간의 무게는 분명하고 묵직했다






흰 개

 

 

김지연

 

 

   어디에나 해가 넘치는 오후였다 해가 넘치는 어디에서 해가 우리를 넘치고 그것이 우리를 지치게 했고 지친 우리의 이마 위로 넘치는 해가 빛났다


   물결 위로 해가 넘치고 난간 위로 해가 넘치고 이것이 어떤 오후라도 넘치는 해 아래에서 물결은 빛나고 빛나는 물결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빛나는 물결 너머 흰 개의 엎드린 등은 희게 빛난다 그것은 곁에 두기에 곁을 주기에 좋은 빛이다


   흰 개는 나를 좋아하는 흰 개다 발등 위로 나를 좋아하는 흰 개가 턱을 기댈 때 부드럽고 따뜻하고 축축한 것을 기댈 때 우리의 머리 위로 해가 쏟아지고 우리는 함께 빛나고


   넘치는 해는 흰 개의 검은 눈으로 넘치다 그 속으로 사라질 것이고 어둠이 내릴 것이고 빛나는 검은 눈 속에서 그 빛은 끝없이 넘치고 흐르고 그것은 모든 것이 어두워진 다음에도 계속될 빛이어서


   넘치는 빛 속에서 일어나 발을 털었다 보얗게 이는 흙먼지도 발등 위 흰 개의 흔적도 모두 반짝이는 것이었다


   작고 약한 짐승의 놀라운 온기가 거기에 있다 언제라도 곁을 주기에 곁에 두기에 좋은 온기로 거기에 있다 흰 개의 눈 속에서 그 비좁은 무한에서 모두가 믿을 수 없이 가까운 곁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온기를 느끼다 믿을 수밖에 없는 마음이 될 것이고 끝없는 처음으로 눈이 내릴 것이고 모든 눈송이가 빠짐없이 상냥할 것이고 우리는 상냥한 흰 눈을 나눠 맞으며 희게 빛나는 세계를 바라보겠지 바라보면서 갓 지은 흰밥을 나눠 먹겠지 그런 희고 빛나는 온기를 나눈다는 것


   넘치는 빛 속에서 모두 빛나는 것이었고 눈이 부신 일이었다고 모든 것이 곁에서 일어난 눈부시게 빛나는 일이었다고 흰빛을 뜨면서 희게 빛나는 눈밭에서 더 흰빛으로 환해지는 흰 개의 곁에서



// 올해 본 신인상 시들 중에는 마음에 든 것이 하나도 없다.. 눈을 떴을 때 H인찬이 너무 많이 보이는 건 차치하고 '빛'은 한두해만 쓰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시는 자생할 수 있다(혹은 자생하지 않아도 좋다) 문지 정도 되면 그렇지 않은 시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Posted by 공장장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