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소비에트의 주체는 원칙상 소비에트의 정치적 공간으로부터 분리된 채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바로 이 명제의 확인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열성분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체제 분자"도 아닌 "정상적인 사람들"을 묶어주는 진정한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시스템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든 공식적 이데올로기와 연동된 삶을 살았다는 점, 그리고 주어진 대본을 연기하는 '주인공'으로서뿐 아니라 나름의 '저자'로서 거기에 함께 참여했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바로 이 사실이 유르착 이 책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다. 국가로부터 최고 혜택을 받는 이론물리학자와 공공기관 중 최저임금을 받는 보일러공을 하나로 묶고, "상상의 서구"를 지향하며 서구의 문화와 스타일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무리("스틸랴기")를 록 음악 전문가인 콤소몰 서기와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유일한 고리는 바로 이런 이데올로기적 담론에의 관여 여부다. 

   그런데 이 명제의 각별한 중요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바깥은 없(었)다'라는 명제는 유르착의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통찰에 직결되어 있는바, (억압적) '권력'과 (창조적) '자유' 사이의 상호 연동이라는 역설이 그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온갖 창조적 일탈의 전술들은 공식 담론과 의례 들에 '반하여' 혹은 그것의 '바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전술들은 공식 담론의 반복적인 재생산 과정 자체를 통해 그것과 '나란히' 이루어진다. 유르착이 말하는 창조적 해석의 가능성, 일탈의 시공간을 여는 "탈영토화"의 작업은 공식 이데올로기의 '외부'가 아니라 그것의 반복적인 수행 '한가운데서' 이루어진다. 그가 제공하는 생생한 에피소드들에서 얻게 되는 놀라운 깨달음은 소비에트의 평범한 인간들이 발명한 수많은 "사소한 책략들"의 배후에서 어김없이 발견되는 것이 이데올로기적 공식 담론 자체라는 사실이다. 새롭고 다채로운 삶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소비에트 시스템 자체였다!

   억압적인 국가 '덕분에' 가능해진 이런 역설적 자유의 상황이 소비에트만의 독특한 현상인지, 아니면 "근대성의 이데올로기 내부의 일반적 역설"(르포르)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깊게 생각해볼 문제다(유르착은 후자를 강하게 시사한다). 중요한 것은 소비에트 국가 시스템이 분명 이런 모순적인 방침과 정책을 계속해서 견지했으며(가령 나쁜 세계시민주의를 비판하면서 좋은 국제주의를 장려하고, 해외 라디오 방송을 차단하면서 단파 라디오를 적극 보급하는 식), 그 시스템의 내부자들 또한 그와 같은 모순적인 입장의 '공존'과 '상호 생산성'을 자기식대로 적극 '수행'해왔다는 사실이다. 콤소몰 간부로서 반부르주아적인 연설문을 작성하는 동시에 서구 록 밴드에 관한 해외 기사를 번역하기도 했던 안드레이는 "개인 문서고에 두 유형의 텍스트들을 '1982'라고 표시한 하나의 서류첩에 함께 보관하고 있었다."(p.414)." (김수환, <옮긴이의 글>,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pp.620-622)



// 놀라운 이야기다. 특히 마지막에 든 예시에서는 거의 시적 긴장마저 느껴진다. 나의 소비에트에 관한 관심은 사회주의 밈들을 보고 피식하는 정도에 그쳐 있다가 <책에 따라 살기>(김수환)를 읽고 크게 달라졌는데, 그 김수환이 번역한 작품인 동시에 정지돈이 강동호와 했던 인터뷰 제목이기도 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당장 구매해서 그러나 아주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고...

Posted by 공장장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