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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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이것을 쓴다. 반복은 즐거움을 준다. 반복은 리듬감도 주지만 슬픔도 준다. 나는 요즘 시의 구조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시의 스타일을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가령, 내가 사용한 문장들의 문법적 구성만을 생각해본다는 말이다. 내가 사용한 단어를 모두 다른 단어로 바꾸는 일 따위 말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와 나는 너를 죽인다는 같은 뜻이다. 나는 사과를 먹는다와 나는 라면을 토한다는 같은 뜻이다. 문법적 구조가 같으면 그 뜻도 같다.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사실만을 말하고 싶다.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 이 문장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지극한 진리다. 이 문장은 이승훈의 문장이다. 이승훈은 스님 같은 문장을 말하지만 이승훈은 스님이 아니다. 이승훈은 스님이다. 겸손한.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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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니 어떤 것이 반복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것은 나의 시다. 이것은 나의 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시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인으로 확실히 인정받는 것일 뿐이다. 내가 이것을 시라고 생각하면 이것은 곧 시이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 텍스트를 꼭 시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음 시집에 이 텍스트는 들어갈 것이다. 시란 무엇인가. 나는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시적인 것에 대한 감각은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습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텍스트 실험을 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고자 한다. 나는 나의 시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 나는 나를 실험하고 있다. 텍스트가 아니라 나를. 나의 스타일, 그것은 쉽다. 나는 수년 전부터 이렇게 썼다. 거의 변함이 없다. 그런데, 나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나는 그 나의 변화와 나의 고집을 믿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한 시인이다.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나는 이제 더는 아름다움을 믿지 않는다. 좋은 시, 좋은 문장은 있지만, 나는 그것 역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데, 시라는 것의 공허한, 무서울 정도로 공허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슬픔과 착각과 어리석음으로 이루어지는 시.
나는 이제 소설을 쓰고 싶은데, 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시와 소설을 구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쓴 자들은 내게 모두 시인일 뿐이다. 지나가면서 하는 말인데, 나는 말라르메 같은 시인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본다. (지나친가? 그래, 그는 좋은 시인이다. 모든 좋은 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의 문학은 망상일 뿐이다. 언어로는 그런 것을 할 수 없다. 역시 지나가며 하는 말인데, 베케트는 언어로 뭘 하려고 한 사람이 아니라 하지 않으려고 했던 자다. 그의 장점은 잘 쓴다는 것과 멋진 분위기를 연출할 줄 알았다는 점이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예술가이기도 하다. 텍스트 실험이라는 것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타 장르와의 만남을 통한다거나 형태적인 실험을 한다거나 타 장르가 되는 것(대표적으로 음악으로서의 시, 타이포그래피로서의 시 등)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극히 보수적이다. 텍스트는 오로지 텍스트 현상으로만 발전할 수 있다. 나는 시의 진보를 믿는데, 그것은 오로지 문장의 차원과 문장의 배치를 통한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말장난이나 이미지나 아름다운 문장이나 이야기나 상징 따위로 문학이 더 갈 곳은 없다. 시는 다만 사유를 넘어가는 지점에서 그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실험적인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온건한 실험.' 이 글은 내 시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시를 일치시키는 시인은 없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의견을 가질 수 있을 뿐이고 자신의 영혼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다. 영혼이 가는 길, 그것이 곧 문장이 가는 길이다. 내가 이런 자가 되는 데 도움을 준 많은 작가의 이름을 나열했다가 지웠다. 오늘은 1월 29일 금요일이다. 2016년이다. 나는 지금까지 45년 9개월을 살았다.
- <<쓺>>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