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몰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안 사람 중에는 수기로 작업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수기로 이야기를 써본 적이 없다. 시도도 해본 적 없다. 나는 노트북을 사용해 작업한다. 말하자면 키보드를. 수기로 작업을 해보았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볼 때는 있다. 키보드와 펜은 전혀 다른 도구이고 도구는 말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니까. 지금처럼 이 식탁 앞에 앉아 뭔가를 써보려고 노력하다가 너무 많은 말을 한 것처럼 입술이 바싹 마르고 나면 얼굴을 문지르며 수기 작업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다음엔 하우게의 신선한 종이와 니체의 타자기를 생각한다.

정신분열을 앓던 정원사 울라브 하우게는 신선한 종이와 좋은 식탁보에 감탄하며 천이 좋고 종이가 섬세하니 단어들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


새 식탁보, 노란색!

그리고 신선한 흰 종이!

단어들이 올 것이다

천이 좋으니

종이가 섬세하니!

피오르에 얼음이 얼면

새들이 날아와 앉지


하우게의 시에 등장하는 종이와 식탁보는 종이와 식탁보였을 것이다. 다른 함의는 없었을 거야. 그냥 단순하게 새 식탁보! 신선한 흰 종이! 나는 이 시를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k에게도 이 시를 읽어준 뒤, 시에 등장하는 느낌표들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 시를 쓴 하우게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


나는 하우게가 그 시를 육필로 적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연필을 사용해, 흑연 심으로 종이를 긁어가며 시를 썼을 것이다. 타자기에 감은 뒤 작은 금속활자들로 두들기는 방식으로는 종이의 섬세함을 느낄 수 없었을 테니 하우게는 아무래도 종이에 손을 대고 있었을 것이다. 종이를 가장 확실하게 느끼는 방법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경험으로 알다시피, 문지르고 비비고 접고 냄새를 맡고 구기고 찢거나 긁어보는 것이니까. 나는 그게 좋아 종이를 수집한다. 대개는 책의 형태로.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노트보다는 무언가 인쇄된 책이 종이로서 더 완전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인데 그림이나 사진보다는 도면이나 문장이 인쇄된 종이가 좋다. 만지기에 더 좋다는 면에서 말이다.(...)


1882년에 니체는 시력 장애로 고통을 겪다가 덴마크제 몰링 한센 타자기를 구입했고 그 사물 덕분에 새로운 방식으로 집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타자기로 글을 쓰는 것은 손으로 펜을 쥐고 필압을 조절해가며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나는 니체가 수기에서 타자로 넘어가며 거의 경이를 경험했을 거라고 믿는다. 근육과 뼈를 사용하는 지속적인 압력에서, 가볍고도 순간적인 타격으로 넘어가는 것.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매번 지연되는 글쓰기에서, 보다 빠르고 단호한 리듬이 실린 조립으로. 그것은 시작부터 니체의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조금 더 음악적인 면도 있었을 거야. 내가 처음 한타를 배워 익숙해지려고 새벽 내내 키보드를 달각달각 만지며 느꼈던 것처럼. 수기에서 타자로 넘어가는 것과 타자에서 키보드로 넘어가는 것은 물론 단순한 비교가 가능한 경험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타자기와 키보드 사이에는 유한한 지면(매번 종이를 롤러에 말아가며, 매번 낱장이라는 새로운 페이지에서 시작되는 쓰기)과 무한한 지면(소프트웨어의 영향을 받는 불안한 쓰기)이라는 차이가 있겠고 무엇보다도 키보드에는 백스페이스라는 것이 있으니까. 니체의 도구에 백스페이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에게 백스페이스라는 툴이 있었다면 차라투스투라는..... 그렇게 말했을까. 니체의 타자기를 생각하다보면 그런 것을 상상해볼 때가 있다.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돈, 영어, 스마트폰...... 나는 한국어로 말할 때와 영어로 말할 때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사람을 한 사람 이상 알고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자주 찍는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부주의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황정은)


Posted by 공장장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