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적 판단이 하는 일은, 그것이 작품의 현실을 가늠하기 위해 사용하는 잣대가 무엇이든 간에(언어적 구조, 역사적 요소, 정통성 작품의 기원이 되는 체험의 정통성 등등) 결국 살아 있는 신체에 죽은 골조를 적용하는 것뿐이다. 결국 예술 자굼은 우리에게 정말 헤겔이 이야기하던 '나무에서 따낸 아름다운 과실'에 지나지 않는다. 행운의 여신은, 그것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놓았을 뿐, 그것을 낳은 나뭇가지도, 그것에 영양을 불어넣은 대지나 과실을 익게 만든 계절의 변화도 우리에게 되돌려주지 않는다. 부정된 것은 미적 판단의 유일하고 사실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인정된 것은 바로 이 그림자에 의해 가려진다. 우리의 예술 예찬은 필연적으로 예술의 망각과 함께 시작된다." -> 불확정성의 원리?


"미적 판단을 통해 우리는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이 도구의 불편한 모순을 만나게 된다. 이 도구는 작품의 현실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끊임없이 예술의 현실과 다른 무엇을 향해 이끌면서 우리에게 작품의 현실을 하나의 단순하고 순수한 무로 제시한다. 복잡하고 세분화된 부정신학과 유사하게 미적 비평은 규정할 수 없는 것의 그림자 속으로 빠져들며 그것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배회를 시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베다Veda의 "이것 말고, 이것 말고" 혹은 산 베르나르도의 "나는 모르네, 나는 모르네"를 떠올리게 한다. 이 무의 열성적인 교화에 길들여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어느덧 예술이 우리에게 스스로의 컴컴한 얼굴만 비추는 행성이 되어버렸다는 것과 결과적으로 미적 판단이란 로고스, 즉 예술과 그 그림자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징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하나의 공식으로, 즉 비평적 판단은 예술을 '예술'로 생각하며, 따라서 어디서든 끊임없이 예술을 예술의 그림자 속으로 끌어들이고 예술을 예술이 아닌 무엇으로 간주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예술', 즉 예술의 순수한 그림자가 최고의 가치로 등극하면서 다스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미학의 땅이다. 우리가 미적 판단의 근원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않는 한 이 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98-99, 조르조 아감벤)


"이제 우리는 예술이 스스로를 넘어선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예술은 죽지 않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무가 되어 자신으로부터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이중적이고 한계를 모르며 아무런 내용도 가지고 있지 않은 예술은 이제 미학의 땅이라는 불모지를 떠돌아다닌다. 예술은 스스로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반환하는 형식과 내용의 사막에서, 예술이 스스로의 확실성에 기초를 세워보겠다는 불가능한 시도를 통해 떠올린 뒤 즉각적으로 파괴해버리는 이 형식과 내용의 사막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 예술의 황혼은 예술의 하루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술의 죽음은 바로 불가능한 죽음을, 아울러 예술 작품의 본질적인 근원에서 더 이상 기준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용 없는 예술의 주체는 이제 도처에서 매 순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순수한 자아의식 속에 투영된 절대적인 자유로 내세우는 부정의 순수한 힘과 일치한다. 이 내용 없는 예술의 주체 속에서 모든 내용이 심연으로 빠져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작품의 구체적인 공간, 한때 인간의 '창조'와 세상이 모두 신성함의 이미지를 통해 그들의 현실을 발견하고 인간의 지상에서의 삶이 매번 상대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던 작품의 공간이다. 창조와 형식의 원칙이 원칙 자체에게 매달려 스스로를 지탱할 때 이 순수한 지지 속에서 신성함의 영역은 빛을 잃고 후퇴한다. 헤겔이 불행한 의식의 본질적인 특징을 목격하고 니체가 광인의 입을 통해 신은 죽었다고 말하게 된 배경을 인간이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의식하는 순간은 다름 아닌 예술의 경험을 통해 주어진다.

이러한 의식의 분열 속에 사로잡힌 예술은 죽지 않는다. 예술은 오히려 정확하게 죽음의 불가능성 속에 존재한다. 스스로르 되찾으려는 예술의 끈질기고 구체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학과 비평의 '박물 극장'은 예술을 다시 창조 원칙의 순수하게 비존질적인 세계로 던져버린다. 예술은 스스로의 현실과 황혼을 발견하고 지켜보았던 모든 특별한 신을 이 텅 빈 자의식의 추상화된 판테온 안으로 주워 모은다. 예술의 분열은 이제 예술이 예술로 성장하는 가운데 탄생시킨 수많은 작품과 형상의 다양성 속으로 유일한 부동의 중심처럼 침투해 들어간다. 예술의 시간은 멈췄다. "그러나 그것은 사분면의 모든 시간을 포괄하는 순간에 서 있으며, 아울러 모든 시간을 끝없이 되풀이되는 한 순간에 위탁한다.""(12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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