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식도 그런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며 그런 사례를 자료에서 보기도 했다. 가본 적 없는 곳의 정보가 새롭게 기억에 입혀지는 것처럼 경험하지 않은 것을 경험하였다고 믿는 일들. 시온은 형에게 특별한 현상이 나타나거나 부작용이라고 할 만한 증상이 생겼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보통 꿈이 뒤엉키거나 무언가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태인씨는 제 생활을 보았다고 했어요. 시온은 그것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냥 지금의 상황들 내가 이렇게 서 있고 앉아 있고 무언가를 강하게 바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에요. 그것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자신을 볼 수 없을 때 자신을 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시온의 얼굴은 이전과는 다르게 평평하고 차분했고 태식은 형이 무언가를 본다면 바로 지금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태식은 다시 한 번 손을 씻고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형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무언가를 보았다면 지금도 볼 수 있겠지 생각하며 형을 내려다보다 형이 누운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바닥에 누웠다. 내가 형의 얼굴을 본다면 형도 나의 얼굴을 본다. 오로지 잠을 자기 위한 목적의 방에 누워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곧 잠이 들어버릴 것 같아 급히 몸을 일으켰다. 다시 형의 얼굴을 내려다보는데 서로가 서로를 볼 수 밖에 없다는 긴장감과 부담감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각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무게를 어깨에 메고 서 있는 것. 한참을 형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태식은 방을 나왔다."(<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

 

"결혼식장은 빛으로 환했다. 태인은 결혼식장 안에 있지도,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서 그곳을 보는 것도 아닌 조금의 거리를 두지만 자세히 살필 수는 있는 곳에서 식장을 바라보았다. 태인이 동면을 하는 동안 본 것은 시온의 결혼식장이었다. 그곳이 정말 결혼식장이었는지 아니면 이전에 가본 성당이었는지 어떨 때는 그저 넓은 테이블만 준비되어 있기도 했다. 넓은 테이블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벌어지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태인은 그곳이 시온의 결혼식장이라 생각했다. 흰 테이블보가 덮여 있고 창에서 햇살은 비스듬히 내려오고 아주 먼 곳에서 음악이 들렸다. 직접 연주하는 것 같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시온이 결혼을 하는구나. 너는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니. 태인은 동면중일 때면 늘 시온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을 다른 동면자들이나 가이드들은 다르게 부를 것이고 흔히 경험하는 현상이라고 해야 할지 착각 중 하나라고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태인은 동면중일 때면 늘 시온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을 다른 동면자들이나 가이드들은 다르게 부를 것이고 흔히 경험하는 현상이라고 해야 할지 착각 중 하나라고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태인은 동면중일 때면 시온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볼 수 있었다. 그것을 확실하게 되었던 때는 시온이 태인의 가이드를 맡았을 때였다. 태인은 시온의 움직임과 흐름을 생생하지만 편안하게 느낄 수 있었고 두 사람을 연결한 흐름이 어딘가에서 부드럽게 물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태인은 동면중인 자신의 상태를 의식하고 있는 셈이니 이것을 바람직한 동면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태인이 있던 곳은 편안하고 상쾌했고 시온의 감정적 흐름이 빗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커피 향이 퍼지는 것처럼 의심 없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 않았고 괴롭지 않았다. 자연스러웠는데 조금 슬펐고 그래서 편안했다. 태인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베개와 침대가 보였다. 원래 쓰던 것이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자신의 것이었다. 태인이, 태인과 시온이 아니면 어떤 힘이 만든 그곳은 태인이 가진 적은 없지만 익숙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두 사람은 그곳에 머물 수 없다. 그것은 과거라고도 추억이라고도 할 수 없고 어쩌면 반복할 수 있는 가능성일지도 모르겠지만 태인은 그것을 반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정확하게 스스로에게 설명하며 결혼식장의 문을 닫고 나왔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빛으로만 가득차 있었다. 돌아서는 목덜미와 등에도 햇빛이 따뜻하게 쏟아지고 있었다."(<일요일을 향하여>)

 

 

// 발목에 얼음찜질 하면서 침대에 무너진 자세로 읽었다. 나머지 단편들은 최소한 두세번씩 봤는데 <이 방에서만..>과 <일요일을 향하여>는 처음 읽었고 동면에 대한 힌트가 될 부분을 옮겨둔다. 물론 박솔뫼가 동면이란 이런거야 이런 걸 거야 어디 따로 정리해두고 그로부터 연작을 써내려갔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때그때..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들을 썼을 거라고 믿지만. 동시에 시온과 태인과 태식의 셋이 결국 함께 만나지 못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동면에 든 사람들 꿈을 꾸는 사람들을 지켜주어야 해요. 

Posted by 공장장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