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이전에 5.18에 관한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실제 내가 그 소설에서 묻고 싶었던 것은,이라고 해야 할지 해보고 싶었던 것은 많은 글에서 당연히 이루어지는 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단원의 막, 의의와 지켜야 할 가치에 가기 전의 공간, 그 공간에 서서 그 공간에 멈춰 있는 상태로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는 것 같은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공간과 기억을 그것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 멈추는지 멈추지 않는지에 대해 늘 쓰고 싶다. 역사라는 것을 내 안에서 다른 식으로 그것이 어딘가에 멈춰 있더라도 공원에 앉아 그냥 우는 것이라도 그것이 결국 의미화될 수밖에 없고 의미화되어야만 하는 것일지라도 거기에 앉아 있는 상태 같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쓰고 싶었다. 그런 의문이 조금 구체화된 것은 도미야마 이치로와의 대담에서 이진경이 발표했던 글을 보고 나서였다. 그는 5.18당시 시위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언급했는데 그 증언의 내용이 ‘길을 가다 사람들을 만나 기뻤고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는 의외의 내용이었다. 그 의외의 내용에 대해 이진경은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글을 결론지었다. 나 역시 그런 식의 글 외에는 다른 식의 어떤 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증언을 곱씹어보고 그 증언이 가닿는 곳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홀로 거리에 있던 자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 데서 느낄 수 있는 우정과 연대일 것이며 5월의 광주에는 그것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 나는 어머니에게 5.18 당시의 이야기를 물었던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사람들은 길가에 우르르 나가서 구경을 많이 했다고 했다,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하러 나갔다고 했다.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고 길에 사람들이 한번에 우르르 다니니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다니고 그런 이야기에는 그 말 자체를 둘러싼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아니 여전히 나는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에서 멈춰 그 자리에 앉아서 더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떤 자리에 멈춰버리는 것, 멈춰버리는 공간을 겹쳤을 때 나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에게 다가오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줄곧 하고 있다. 또한 당분간 하게 될 고민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 중, <<겨울의 눈빛>>, 박솔뫼)
오래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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